
■ Why - 기대 못 미치는 기업 밸류업
인센티브도 없는데 왜
정부는 주주친화정책 원하지만
상속稅 등 부담… 부양의지 부족
기업들 저조한 참여
공시 시작 4개월간 1.5%만 동참
해외선 “종목 본 뒤 할 말 잃었다”
인위적인 부양책은 한계
연구·개발 등 투자 통한 혁신으로
기업 이익·체력 키우는 게 급선무
정부가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 현상’ 해소를 위해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지만, 오히려 ‘밸류 다운(Value down)’이란 지적을 받고 있다. 지난 2월 정부가 예고한 밸류업 프로그램들이 하나둘씩 베일을 벗고 있음에도 한국 증시는 연초보다 역행하는 등 정책 효과에 대한 기대를 못 받고 있기 때문이다. 지배주주와 일반주주 간 이해가 다른 데다, 이를 극복할 세제 혜택과 같은 정책 인센티브도 덜해 상장회사들이 적극적으로 기업가치 제고에 나서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한국 증시를 있는 그대로 직시해야 한다며 정책을 통한 인위적인 증시 부양보다 기업 이익과 체력이 개선될 근본적인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뛰는 세계 증시, ‘나 홀로’ 하락하는 한국 증시=2일 코스콤 체크에 따르면 지난달 27일 기준 코스피 종가는 2649.78을 기록해 지난해 마지막 거래일(2655.28) 대비 0.21% 하락했다. 같은 기간 미국 다우존스30 산업평균지수(다우지수)는 12.27% 상승하는 등 주요국 글로벌 증시는 미국의 ‘피벗(통화정책 기조 전환)’에 따라 훈풍 세를 맞고 있는 것과는 상반된다. 닛케이225 평균주가(닛케이225지수)는 19.02% 상승했으며 인도 센섹스지수(BSE30, 18.40%), 독일 DAX 40 지수(DAX30, 16.25%), 영국 FTSE 100 지수(7.60%) 등도 일제히 상승했다. 대만 가권 지수는 27.28% 올랐다.
정부가 밸류업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한 자본시장 선진화 정책을 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2월 26일 ‘한국 증시 도약을 위한 기업 밸류업 지원 방안’ 세미나를 열고 밸류업 프로그램 세부계획을 공개했다. 전체 상장사가 기업 가치를 높이는 방안을 자율적으로 공시(지난 5월 2일, 밸류업 공시)하도록 하고, 기업 가치 개선 우수기업으로 구성된 지수(지난 9월 24일, 코리아 밸류업 지수)와 이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선물 상품·상장지수펀드(ETF)를 도입하는 것이 대표적인 방안이다.
하지만 시장 반응은 냉담하다. 밸류업 공시가 시작된 지 지난달 30일까지 약 4개월 동안 공시에 나선 상장사는 코스피 32개, 코스닥 시장 9개 등 총 41곳으로 공시 대상 상장사(2586개) 중 1.58%만 참가하는 데 그쳤다. 밸류업 프로그램이 벤치마킹하고 있는 일본의 경우 비슷한 기간 동안 10% 넘는 기업이 밸류업 공시에 동참한 것과 비교하면 뒤떨어진다. 밸류업 지수에 대한 혹평도 있었다. 스위스 투자은행 UBS는 밸류업 지수 발표 다음 날인 지난달 25일 기관 투자 노트를 통해 “(한국거래소가 발표한) 밸류업 지수 종목 100개를 보고 할 말을 잃었으며, 지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거래소가 빨리 깨달아야 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국내 증권사들의 지적도 이어지자 거래소는 지난달 26일 긴급 기자간담회를 열어 연내 지수 종목을 변경하겠다고 발표했다.
◇한국 증시·밸류업 저평가 왜?=정부의 노력에도 이처럼 한국 증시와 밸류업 지수가 탄력을 받지 못한 것은 지배주주와 일반주주 간의 이해가 다르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정부는 상장사의 주주 친화 정책을 유도해 기업가치를 끌어올리겠다는 구상이지만 정작 지배주주는 높은 상속세율 등 부담이 큰 상황에서 주가 부양 의지를 갖기 쉽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지난달 23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도 “대기업을 지배하는 총수 일가의 이해관계는 일반적으로 소액주주 이해관계와 일치하지 않는다”며 밸류업 프로그램의 성공 가능성을 낮게 봤다.
정부는 내년부터 상속세 최고세율을 40%로 낮추겠다며 관련 세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한 상태지만, 여전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상속세 최고세율(약 26%)보다 높다. WSJ는 “높은 상속세율은 (대주주) 가족들이 회사의 높은 주가를 원하지 않는 이유”라면서 “정부는 세금을 낮추는 방안을 제안했지만, (이 정도 수준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기업 경쟁력 제고 우선=한국 증시가 반등하기 위해서는 시장의 평가를 직시하고 근본적인 체질 개선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국식 세제 정책과 기업들의 낮은 증시 부양 의지 등과 같은 외적인 요인이 아니며, 실제 기업 이익 체력이 반영된 게 현재 증시라는 의미에서다. 밸류업을 위해서는 기업 경쟁력이 높아져야 한다는 의미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상장사가 자신들의 가치를 ‘10’이라고 보는 반면, 시장에서는 그보다 못한 등급을 매기는 것을 저평가라고 한다”며 “그러나 상장사 중에 자신들이 실제 저평가됐다고 판단하는 회사가 몇이나 될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상장사들 스스로도 경쟁력이 약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을 것이라는 비판이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기업이 스스로 가치를 올리는 것이 더 중요한 이유에서 인위적인 증시 부양 정책이 얼마나 효과를 나타낼지 모르겠다”며 “중소기업은 차치하고 대기업은 지속해서 연구·개발(R&D)에 투자해 혁신해야 하는데 밸류업 정책도 이런 방향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신병남 기자 fellsick@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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