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딴생각은/ 이 순간 나만을 위한 집을 짓겠다는/ 노련한 목수나 인부의 의지로부터 온다.// 개중 복도가 길고 구조가 복잡해/ 낮에도 길을 잃어 가슴 아픈 집들은 아름다운 날씨와 풍광 속에서 가장 빠르게 만들어진다.’

- 김연덕 ‘느린 상처’(시집 ‘폭포 열기’)


해가 갈수록 느는 게 나이만은 아닐 터다. 이를테면 흰 머리카락의 수. 이젠 셀 수가 없다. 책장에 꽂힌 책들. 남은 평생을 독서에 할애해도 다 읽을 수 있을까 싶다. 그리고 친구들의 자녀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기꺼이 ‘조카’라 부르는 내 소중한 꼬마 친구들.

갓 태어나 옹알이를 하던 아기들이 무럭무럭 자라서 초등학생이 되고 중학교에 입학하는 과정을 보는 건 새삼 놀랍고 즐거운 일이다. 정작 그들과 함께 살며 뒷바라지하는 내 친구들은 마냥 그렇지도 않은 듯하다만. 아닌 게 아니라 그제 전화를 걸어온 친구는, 잘 지내느냐는 안부 인사에 대뜸 한숨을 내쉰다. 가족 모두 건강하며 직장에서도 무탈하다만, 걱정이 있다면 둘째 아이의 엉뚱함이란다. 두루 무난한 맏이와는 달리 둘째는 활달하고 호기심 많지만 가만있질 못하고 주의가 산만하단다. 얼마 전에는 아이의 담임선생님과 상담을 했는데, 상상력이 풍부하지만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고 자주 딴생각을 하곤 한다며 웃었다는 것이다. 친구의 시름이 안타까우면서도 솔직히 나는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겠다. 되레, 둘째 아이의 딴생각을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수업에 집중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물론 알고 있다. 그러나 딴생각, A에서 B를 생각하고 C를 떠올리며 자유롭게 유영하는 남다른 능력이 아닐까.

집중력이야 한 살 두 살 먹어가며 바로잡힐 수 있지만, 생각의 유연함은 어릴 적이 아니고서는 마련하기 어렵다는 나의 의견에 친구는 위로가 된다, 한다. “그런데, 아이도 없는 내 조언이 도움이 될까?” 되묻자, “내 주변에서 가장 딴생각 많은 사람이 너거든” 하고 친구는 웃었다.

시인·책방지기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