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미 문화부 차장

MZ세대가 주도하는 새로운 현상 중 의아하면서도 놀라운 건 ‘독파민’과 ‘텍스트힙’이다. 독파민은 대척점에 선 두 단어, 즉 인내와 끈기를 요구하는 ‘독서’와 순간적 뇌의 즐거움을 좇는 ‘도파민’을 합쳤다. ‘조용한 곳에서 벗어나 특정 장소에서 독서하며 복합적인 재미와 경험을 찾아 도파민을 충족한다’는 의미. 텍스트힙은 어떤가. 지루하고 뻔한 취미 중 하나였던 글과 책(텍스트)이 ‘힙’(멋지다, 개성 있다)을 만났다. 다시 말해, ‘읽고 쓰는’ 행위가 ‘멋지고 개성 있는 것’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어쩌다 독서까지 도파민 분비에 일조하게 됐나. 얼마나 책 읽는 사람이 줄었으면 독서가 힙해졌나. 탄식을 앞세우기 전,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 보자. 독파민을 얻기 위해 MZ들은 도심이 한눈에 들어오는 북카페를 찾고, 와인이나 위스키를 마시며 ‘한 책’할 수 있는 북바에 자리를 잡는다. 또, 한밤중에 좋아하는 작가를 만날 수 있는 심야 북토크에 참석했다가, 밤새 책을 읽고 첫차로 귀가한다. 날씨가 좋으면 잔디밭이나 천변에서 ‘책멍’. 또한, 이들은 SNS나 독서모임에서 그 경험을 공유한다. 책과 함께 보낸 시간을 사진으로, 또 인상 깊었던 문구를 필사해 올린다. 그렇게 ‘텍스트힙’을 추구하는 ‘나’. 얼마나 멋진지.

대한민국 성인 10명 중 6명이 한 해 단 한 권도 읽지 않는다는데, 어떻게든 책과 친해지려 하는 것이 갸륵하다. 독서와 관련한 ‘현상’이 회자 된다는 게 감지덕지다. 그런데 마냥 반길 수는 없다. 독파민엔 무엇이든 ‘도파밍’(자극을 추구하며 재미를 모으는 현상)의 수단이 되는, 그러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하는 세태가 담겨 있다. 또, 텍스트힙은 독서가 이미 ‘소수의 취미’로, 낡고 희귀하고 별나게 인식되고 있다는 서글픈 현실, 그리고 시대의 난제인 ‘자기 과시’ 심리를 반영한다. 불교박람회 흥행과 명상 인기로 생겨난 ‘불교힙’이나, 궁궐 관람객이 늘고 문화유산 굿즈(상품)가 잘 팔리는 ‘트래디셔널힙’의 경우와는 다른 것이다. 흥미와 재미에, 다소나마 ‘긍정적인 미래’를 상상하게 해주던 두 현상과 달리, 독파민과 텍스트힙에는 지금까지 인류가 지속해 온 독서와 책에 종언을 고하는 듯한(어쩌면 이미 종언했는지도 모른다), ‘절망적’ 기운이 스며들어 있다. 끈질기게 읽고, 성찰과 통찰을 통해 인간 고유의 지적 능력을 키우는 그러한 독서와 책 말이다.

독서랑 도파민이 그만 친했으면. 텍스트가 더는 ‘힙’하지 않았으면 한다. 읽고 쓰는 행위가 특별한 취미나, 한때의 유행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이자 삶의 기본 요소로서 다시 돌아왔으면 한다. 그러기 위해 정작 ‘힙’해져야 하는 건 국민 독서율을 높일 수 있는 정책이다. 매체 환경 변화에서 나타난 자연스러운 현상(독파민과 텍스트힙)을 받아들임과 동시에, 떨어지는 독서율과 책 판매율을 막을 길 없다는 자조를 뚫고, 이제는 ‘힙’한 독서진흥정책이 한번 나와줬으면 한다. 정부는 2028년까지 국민의 절반을 한 해 책 한 권 읽는 독자로 만들겠다고 선언한 후, 지난달 1만여 건의 행사를 진행했다. 글쎄, 이것이 멋졌는지는 차치하고, 9월이 ‘독서의 달’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이가 드물다는 건 분명하다.

박동미 문화부 차장
박동미 문화부 차장
박동미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