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립경주문화유산연구소는 "경주 월성 A지구 서남쪽 일대를 발굴 조사한 결과, 사로국 시기에 해당하는 3세기 전∼중엽의 취락 양상을 확인했다"고 2일 밝혔다. 사로국은 초기국가시대 진한(辰韓)의 12국 중 하나다.
이번에 사로국 시기의 마을 공동체의 거주 흔적이 확인된 곳은 월성 서남쪽 가장자리, 월정교 부근이다. 조사 결과 유적 일대는 하천과 인접해 있는 연약한 지반에 모래층이 쌓여 있었으나 3세기 전∼중엽에 취락을 조성하기 위해 흙을 다지는 인공 작업이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연구소는 "벼의 겉껍질, 식물 종자, 조개껍데기 등이 섞인 유기 물질을 공정별로 다르게 사용해서 약 1.5m 높이로 흙을 견고하게 하는 작업을 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모래땅을 생활 근거지의 기반을 조성하는 건 당시 기준으로 만만치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관계자는 "월성의 성벽은 4세기 중·후엽에 쌓은 것으로 보는데, 그보다 100여 년 앞선 시점에 막대한 인력과 물자가 동원되는 작업이 이미 진행된 셈"이라고 설명했다.

취락 입구에서는 제사 등의 의례가 거행된 것으로 추정되는 흔적도 발견됐다. 나무 기둥을 세워 만든 것으로 보이는 유구는 직경이 6m 정도 되는 원형 구조였고 의례를 마친 뒤에 불을 질러 태운 것으로 추정된다. 내부에서는 종류별로 2∼3점씩 짝을 맞춘 토기 15점이 출토됐으며 황색 안료가 발린 마직물로 감싼 것으로 보이는 흔적도 확인됐다. 특히 연구소는 거의 완전한 형태로 발견된 개로 추정되는 동물 뼈에 주목하고 있다. 연구소 측은 "비슷한 시기에 개를 의례 제물로 바친 정황은 발견된 사례가 없다"며 "어떤 목적에서 개를 희생시켜 의례를 지냈는지 연구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삼국사기 등에서 언급된 성벽을 쌓은 시기보다 100여 년 앞선 때에 대대적인 공사를 거쳐 사람들이 살았던 것으로 보이는 자취가 나온 만큼 이번 조사 결과는 향후 월성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될 전망으로 기대를 모은다.

경주 월성은 신라 궁궐이 있었던 도성을 가리킨다. 전반적인 형태가 달을 닮았다는 이유로 ‘월성’이라고 불렀으며, 조선시대에는 ‘반월성’(半月城)이라 칭하기도 했다. 왕이 계신 성이라 해 ‘재성’(在城)이라고도 했다.
장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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