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혜진 국제부 차장

며칠 전 미국 워싱턴DC로 출장을 다녀왔다. 한국언론진흥재단·미국 동서센터와 함께 미국 대선, 한미동맹, 북핵 이슈에 대한 미국 내 시각을 알아보기 위한 목적이었다. 북한이 고농축우라늄(HEU) 제조 시설을 공개하며 미국 대선 전후로 7차 핵실험에 나설 것이란 전망까지 나오던 시기였던 만큼 꽤 밀도 높은 얘기를 들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에 부풀었다.

하지만 워싱턴은 놀라울 정도로 북한 문제에 무심했다. 대선 정국이라 모든 관심이 국내 이슈에 방점이 찍혀 있는 것을 감안하고라도 미국에서 보도되는 해외뉴스 대부분은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 이슈가 차지하고 있었다. 미국 최대 공영 라디오 매체인 ‘NPR’ 관계자가 설명해주는 주요 해외뉴스 순위에서도 북한 뉴스는 우크라이나, 중동, 아이티, 수단, 중국에 밀려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이러한 분위기는 워싱턴 정계에서도 분명히 읽혔다. 워싱턴에서 가장 오래된 싱크탱크에서 한반도 전문가로 일하고 있는 한 연구원은 북한의 7차 핵실험 가능성에 대해 “우려는 있지만 ‘소왓’(so what·그래서 뭐)이라는 인식이 강하다”고 했다. 빅터 차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석좌 역시 “예전에는 북한에서 핵실험을 하면 난리가 났는데 지금은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이동발사대에서 쏴도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미 의회 상원 군사위원회에 소속된 민주당 한 의원실 관계자는 “북한뿐만 아니라 러시아·중국·이란이 협력하면서 위협이 커지는 것에 대한 우려가 크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것을 보면 중국도 대만에 그러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북한보다 중국의 위협에 방점을 찍는 모습이었다.

더 심각한 문제는, 한미 양국 간은 물론 국제사회에서 북핵 문제 해결의 대전제로 여겨졌던 ‘선(先) 핵 폐기, 후(後) 보상’에 입각한 비핵화 원칙이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다. 민주당 성향의 한 싱크탱크 관계자는 “미국의 정책 입안자들은 더는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귀띔했다. 또 다른 싱크탱크 전문가는 한발 더 나아가 “북한을 국제사회로 복귀시키기 위해서라도 이제는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최근 ‘북한은 사실상 핵보유국’이라는 발언으로 파장을 일으킨 라파엘 그로시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의 견해에 대해 워싱턴에선 상당한 공감대가 쌓인 듯했다. 이미 공화당에 이어 민주당 정강 정책에서 ‘북한 비핵화’ 문구가 사라졌다는 점을 고려하면 차기 미국 정부의 초점이 북한의 핵을 용인하는 ‘핵동결·비확산’에 맞춰질 것이란 분석이 그리 허무맹랑한 얘기는 아니란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전략은 무엇인가. ‘워싱턴 선언’과 ‘핵 억제 공동 작전 지침’으로 미국으로부터 더 굳건한 핵우산 약속을 받아낸 것으론 부족하다. 분명한 사실은, 북한은 핵을 가지고 있고 우리는 없다는 점이다. 한반도 비핵화 원칙이 깨진다면 우리도 이에 상응하는 전략을 고심해야 한다. 미국만 믿고 있기엔 우리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너무 불안하다.

황혜진 국제부 차장
황혜진 국제부 차장
황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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