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철환의 음악동네 - 데이식스 ‘해피’

마음을 흔든 노래는 순간의 풍경마저도 살려낸다. 이를테면 이런 경우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동네이발소에서 머리를 깎는데 고물 라디오에서 소스라치도록(놀라서 몸을 움직인다는 의미니까 이발사 아저씨의 가위도 덩달아 흔들렸을 터) 아름다운 노래가 흘러나왔다. 소년은 집으로 가면서 노래의 절정 부분(‘아~ 그 사람은 어디에 갔을까’)을 반복해서 되뇌었다. 딱 한 번 들었을 뿐인데도 가슴에 팍 꽂혀버린 거다. 안개 낀 날이면 상고머리 기술이 뛰어났던 이발사의 미소와 함께 눈앞에서 기도하던 부부(밀레의 그림 ‘만종’)가 떠오른다. ‘그 사람은 어디에 갔을까 안개 속에 눈을 떠라 눈물을 감추어라’(정훈희 ‘안개’).

노래가 나를 흔든 일화는 심해에서 미역 캐듯 줄줄이 꺼낼 수 있다. 밤새도록 편집실에 있다가 새벽에 귀가하는데 라디오에서 저미도록 아름다운 노래가 흘러나왔다(저민다는 건 칼로 도려내듯이 쓰리고 아프게 한다는 뜻). 도대체 이 노래 뭐지. 디제이가 다시 한 번 얘기해주길 간절히 바랐건만 내 소망은 광고에 묻혀 전달되지 못했다. 하지만 가수의 거친 목소리 끝자락에 비틀거리며 나오던 ‘비틀거릴 내가 안길 곳은 어디에’를 단서로 나는 방송사 안의 음악사랑 네트워크(공식 명칭은 아니고 만나면 주로 음악 관련 대화를 나누던 지인 그룹)를 가동했고 문제의 노래가 김현식의 ‘내 사랑 내 곁에’라는 걸 알아냈다.

노래가 나를 흔든 게 언제까지였나. 이제는 내가 노래를 흔든다. “요즘 신곡 듣고도 그렇게 심쿵하시나요?” 새 노래를 듣고 소스라치거나 그 노래에 아프도록 빠져든 기억은 아득하다. 이럴 땐 농담으로 대응한다. “심장에 쿵 충격이 오면 응급실 가야지.” 솔직히 심쿵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심란하지도 않다. 음악동네엔 나이 제한이 없다. “요즘 어떤 노래 좋아해” 하며 오히려 내가 먼저 공격(?)한다. 젊은이들의 답변이 겹치면 바로 찾아서 들어본다. 그들은 좋다고 하는데 ‘이것도 노래냐’ 내가 반응하는 순간 교류는 어색해지고 나의 음악실엔 어둠이 감돌 것이다.

오늘은 데이식스의 노래를 찾아 듣는다. 제목이 ‘해피’다. 행복해서 이런 노래를 만든 건지 불행하니까 이런 노래를 부르는 건지 탐색에 들어간다. ‘그런 날이 있을까요 마냥 좋은 그런 날이요 내일 걱정 하나 없이 웃게 되는 그런 날이요.’ 이 젊은이도 걱정이 많구나. 데이식스의 리더는 ‘히든싱어2’(2013년 12월 14일 방송)에서 ‘연습생 박진영’으로 나왔던 성진(1993년생)인데 그의 좌우명이 눈길을 끈다. ‘살면서 적을 만들지 말자. 혼자는 안 죽는다.’ 마치 너 죽고 나 죽자 같은데 설명을 들으니 그건 오해였다. 죽을 때 옆에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 외롭지 않고 화목하게 살고 싶다는 뜻이다.

어릴 때 동네를 어슬렁거리는 강아지 중엔 해피도 있고 워리도 있었다. 해피(Happy)는 친구가 많고 워리(Worry)는 걱정이 많았다(물론 감정이입으로 꾸며낸 얘기). 바비 맥퍼린이 부른 ‘돈 워리 비 해피’(1988)를 ‘걱정하지 말고 행복해라’가 아니라 ‘걱정 안 하는 게 행복’이라고 나는 해석한다. 명곡 속엔 대체로 명언이 있는데 이 노래도 예외가 아니다. ‘고통 없는 인생 있나요(In every life we have some trouble) 하지만 걱정하면 그게 두 배가 되죠(But when you worry you make it double).’

내친김에 데이식스의 히트곡 하나 더 펼쳐본다. ‘아름다운 청춘의 한 장 함께 써 내려가자 너와의 추억들로 가득 채울래 아무 걱정도 하지는 마’(데이식스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 청춘은 짧고 추억은 길다. 1억 만들기보다 추억 만들기. 내가 청춘들에게 넌지시 건네는 말이다.

작가·프로듀서·노래채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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