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 속의 This week
1983년 10월 9일 버마(현 미얀마) 수도 랑군(현 양곤)의 아웅산 국립묘지. 태극기를 단 검은색 차량이 들어서자 국립묘지 행사의 의례인 진혼 나팔이 울려 퍼졌다. 그런데 갑자기 엄청난 폭발음이 행사장을 뒤흔들고 건물 지붕이 무너져 내렸다. 자욱한 연기 속에 여기저기서 비명이 들리며 현장은 아비규환으로 변했다. 순방 중이던 전두환 대통령을 겨냥한 ‘아웅산 폭탄 테러’였다.
전 대통령과 수행원들은 전날 버마에 도착했다. 서남아시아 및 대양주 6개국 순방 중에 버마는 첫 방문지였다. 당초 버마는 순방 계획에 포함돼 있지 않았다가 뒤늦게 추가됐다. 영빈관에서 하룻밤을 보낸 전 대통령은 이날 오전 미얀마의 독립 영웅 아웅산 장군의 묘소를 참배하기로 돼 있었다. 정부 각료들이 묘소에 먼저 와서 10시 30분 도착할 예정인 대통령을 기다렸다.
근처에 숨어있던 테러범들은 묘소로 들어가는 이계철 주버마 대사의 차를 대통령이 탄 차로 착각했고, 곧이어 나팔 소리가 들리자 행사가 시작된 것으로 알고 10시 28분 원격 조종 장치를 눌렀다. 미리 설치한 폭탄 3개 중 1개가 폭발하면서 서석준 부총리, 이범석 외교부 장관, 김동휘 상공부 장관, 함병춘 대통령비서실장, 김재익 경제수석비서관을 비롯한 공식 수행원과 취재진 등 17명이 목숨을 잃었고 14명이 부상을 당했다. 전 대통령은 안내를 맡은 버마 외교부 장관이 지각하는 바람에 예정보다 4분 늦게 영빈관에서 출발해 화를 면했고, 이후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급히 귀국했다. 비극적인 사건으로 온 국민이 큰 충격과 슬픔에 빠졌다. 10월 13일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100만 명이 운집한 가운데 희생자들의 영결식이 거행됐다.
버마 당국의 수사 결과 북한군 정찰국 특공대 소속 3명이 테러를 벌인 것으로 드러났다. 공작원 신기철은 체포 과정에서 사살됐고, 김진수는 버마 법원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뒤 이듬해 처형됐다. 테러 사실을 자백한 강민철은 교도소에서 복역하다 2008년 사망했다. 잔혹한 테러에 대해 당시 미국 등 69개국이 북한을 규탄했고, 버마를 포함한 10여 개국은 단교 또는 수교 거부를 선언해 북한이 외교적으로 고립되는 결과를 낳았다.
장·차관급 공식 수행원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이기백 전 국방부 장관(2019년 별세)은 지난 2013년 아웅산테러 30주기를 맞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아웅산 테러가 잊히는 것이 가장 한스럽다”며 “동서고금에 유례가 없는 만행을 상기하는 시설이 현지에 전혀 없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라고 했다. 이듬해 테러가 발생한 지 31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추모비가 현지에 세워졌다. 지난해 40주기에는 국가보훈부가 처음으로 추모식을 주관해 순국한 17명의 국가유공자를 기렸다.
김지은 기자 kimjieu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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