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요리 서바이벌 예능 ‘흑백요리사 : 요리 계급 전쟁’이 화제다. 넷플릭스 글로벌 톱10 TV(비영어) 부문 1위에 ‘밈’이 쏟아지고 출연자의 식당엔 긴 줄이 섰다. 미슐랭 스타부터 명장까지 톱 클래스 ‘백요리사’와 덜 알려진 신진 ‘흑요리사’의 대결이라는 흥미로운 설정에서 예측할 수 없는 결과가 더해져 말 그대로 ‘홈런’을 날렸다. 흥행의 트리거는 눈을 가린 ‘블라인드 심사’였다. 까만 안대로 눈을 가리고 음식을 떠먹여 주는 장면은 강렬한 충격을 안기며 프로그램의 핵심 철학을 제공했다. 참가자의 경력과 기존 평가, 인맥에 관계없이 오직 맛으로 ‘공정’하게 평가하겠다는 것이다. 보는 순간 편향과 편견이 무의식적으로 작동하는 인간 뇌에 검은 천을 두르는 시도다.
블라인드 실험은 과학에서 편견을 배제하기 위한 기본적인 방법이다. 실험실 밖에서도 익숙하다. 1976년 와인 종주국 프랑스와 신흥국 미국 와인이 블라인드 테스트를 벌여 미국이 이기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블라인드 채용도 빼놓을 수 없다. 2017년 정부가 블라인드 채용 추진 방안을 발표한 뒤 기업에서도 학력·나이 등을 가린 블라인드 채용·면접이 활발하다.
시음부터 채용까지 블라인드 테스트의 드라마틱한 결과는 ‘언더독의 승리’다. 기득권과 편견을 딛고 진짜 실력자가 등장하는 ‘영웅 서사’다. 하지만 이는 ‘블라인드’가 아니면 실력자는 묻힌다는 불공평한 현실을 전제하는 아이러니를 안고 있다. ‘흑백요리사’의 미덕은 이 지점이다. 블라인드 심사를 통해 흑·백요리사 모두가 ‘영웅’이 됐기 때문이다. 눈을 가린 두 심사위원은 논쟁을 통해 백요리사의 공력과 경륜을 드러냈고, 흑요리사의 실력을 평가했다. 백요리사도 오랜 노력 끝에 그 자리에 올랐다는 서사를 만들어내면서 패자가 없는 결과를 만들었다.
2021년 ‘오징어 게임’의 흥행 이후 드라마와 예능을 가리지 않고 각자도생식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이어져 왔다. 3년 만에 ‘흑백요리사’는 공정을 내세워 이제까지도 공정했고, 앞으로도 공정할 것이라는 서사를 보여줬다. 이 시대 대중의 욕망일 뿐 아니라 우리 사회가 그만큼 새로운 지점에 당도한 것을 보여준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전진하는 이 시대에 낙하산이 난무한 정치는 최악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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