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lobal Economy

낡은 관습 발목잡힌 석유 부국


중동 석유 부국들이 신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기술 투자 비중을 높이며 글로벌 인공지능(AI) 산업의 ‘큰손’으로 떠오르고 있지만, 여전히 성·인종·민족·종교 등 기본권에 대한 차별이 존재해 ‘인권 후진국’이라는 오명을 벗지 못하고 있다.

8일 인권단체 국제앰네스티에 따르면 이라크, 리비아, 시리아, 예멘 등 중동 각국에서 오랫동안 지속된 전쟁과 갈등으로 수백만 명의 사람의 삶이 파괴되면서 강제 이주한 난민, 소수 민족을 포함한 소외된 사람들은 생존권을 비롯한 기본적인 권리도 박탈당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시리아 내전이 12년째 이어지며 시리아와 동맹국들은 불법 공격으로 민간인을 학살하고 수만 명을 강제 이주시켰다. 이러한 사항들은 국제 인도법 위반이지만 정작 인권 침해의 가해자인 시리아 정부는 범죄에 대한 처벌을 받지 않았다고 앰네스티는 비판했다. 이와 함께 중동국가들은 행정 구금, 고문, 불법 살인 등으로 주민들의 기본적인 권리와 자유도 박탈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여성 인권 문제는 개선되지 않고 있다. 여성들은 신체적 자율권을 침해받고 이동·표현의 자유, 정치적 지위 및 고용 기회 등에서 차별을 받고 있다. 지난 6월 발표된 세계경제포럼(WEF)의 ‘2024 세계 성차별 격차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대상국(146개) 가운데 사우디아라비아(126위), 카타르(130위), 오만(136위), 이란(143위), 파키스탄(144위) 등 중동국가들이 최하위권에 자리 잡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여성이 남성 후견인의 의지에 따라 행동하는 ‘후견인 제도’가 존재해 여성 인권 후진국으로 불린다. 여성은 가족의 관습, 남성의 결정에 따르지 않을 경우 구금되거나 징역형을 선고받을 수 있다.

강제 히잡 착용에 반대하는 이란의 히잡 시위는 2주년이 넘었지만 해결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이란 당국은 히잡 착용을 거부하는 여성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고 인권 활동가와 언론인, 변호사들을 체포했다. 알제리와 이라크에서는 성폭행범이 피해자와 결혼할 경우 기소를 피할 수 있는 조항이 법률에 버젓이 존재한다. 정치적 갈등으로 반체제 인사에 대한 불법 구금과 고문도 여전히 자행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언론인인 자말 카슈끄지는 지난 2018년 튀르키예 이스탄불 사우디아라비아 총영사관에 살해당했다. 카슈끄지의 비판 대상이었던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 측근들의 범행이었는데, 국제사회 비판에 사우디아라비아 왕가는 관련자들만 처벌하는 꼬리 자르기로 대응했다.

이종혜 기자 ljh3@munhwa.com

관련기사

이종혜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