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모든’ 각본 쓴 신효진
국립극단 ‘창작공감’ 지원 받아
각 전문가 자문 얻고 완성도 높여
“나는 나보다 훨씬 더 나은 존재가 만든 세상에서 살고 싶었는데….”
국립극단이 기획한 연극 ‘모든’은 인공지능(AI)에 의해 설계되고 운영되는 세상을 그린다. 그 세상에서 15세 소녀 ‘랑’(강민지 분)은 AI에 연결되는 시술을 앞두고 있다. 그러나 거부감은 전혀 없다. AI가 인간을 지배하는 디스토피아는커녕, AI와 연결된 ‘A구역’은 랑에게 배고픔도 아픔도 없는 유토피아다. 하지만 “바깥으로 나가야지!”라고 외치는 정체불명의 노인 ‘페’(이미숙 분)가 나타나 랑의 세계를 깨뜨린다. A구역의 문을 열고 나가는 랑의 모험을 통해 작품은 질문을 던진다. 표백·멸균·순결·안심 등의 단어만 남아 있는 세상은 환상이자 환각이 아닐까.
AI를 다룬 여타 작품과의 차별점이 여기에 있다. 오염·세균·불결·불안은 일단 부정하고 보는 우리는 이미 A구역에 살고 있거나 그곳에 가고 싶은 게 아닌지 질문하는 것이다. 랑이 말하는 ‘더 나은 존재가 만든 세상’을 꿈꾸는 이들의 목소리는 늘 있었다. 작가 신효진은 AI 데이터 기술, 이용자 요구에 따르는 텍스트·이미지·음악·코딩 등 관련 지식을 집요하게 들여다보고 각본을 썼다. 작품의 질문이 객석에 자연스럽게 스며들도록 만들었다.
이 완성도의 배경에는 지난 1년간 관련 전문가들과의 워크숍 등 개발 과정이 있다. 각본을 완성하기까지 신효진은 정재승 카이스트 뇌인지과학과 교수, 홍승범 국립농업과학원 농업미생물과 박사 등을 만나 작품 관련 워크숍을 했다. 지난해 정 교수는 AI 알고리즘으로 인한 환각 반응, 홍 박사는 이 작품의 핵심 소재인 균과 관련한 자문 제공을 했다. 과학계뿐 아니라 사회학계 등 또 다른 전문가 워크숍도 이뤄졌다.
신인에 속하는 신효진이 이 작업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국립극단 ‘창작공감’ 프로그램의 대상으로 선정됐기 때문. 지원금은 물론 국립극단이 작가와 함께 작품을 개발한다. 발표회, 워크숍 후 무대 공연까지 지원하는 사업으로 지난 2021년부터 이어져 왔다. 연극 ‘모든’의 공연은 서울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에서 27일까지 계속된다.
오는 19일까지 공연하는 두산아트센터(DAC) 기획의 연극 ‘애도의 방식’도 창작자 지원 프로그램을 거쳐 무대에 올랐다. 두산아트센터는 2007년부터 40세 이하 예술가를 발굴 지원해 왔다. ‘DAC 아티스트’ 프로그램은 제작비뿐 아니라 공연장·연습실과 해외연수도 지원한다. 이 작품의 신진호 연출도 이를 통해 가출 청소년·미등록 이주아동 등 사각지대를 조명할 수 있었다. 오는 29일부터 11월 16일까지 두산아트센터에서 공연하는 연극 ‘시차’도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제작됐다. 작가 배해률은 1994년 10월 성소수자 증오범죄 피해자의 이야기와 2014년 4월의 한 장례지도사의 이야기를 다뤘다.
서종민 기자 rashomo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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