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삼성 ‘실적 부진’ 이례적 사과
‘반도체 수장’ 전영현 부회장
“기대 못미쳐 송구” 직접 메시지
미래 대비·조직문화 쇄신 언급
이재용 “파운드리 분사 없다”
반도체 위기 정면돌파 의지
‘삼성 반도체 구원투수’로 지난 5월 등판한 전영현 디바이스 솔루션(DS) 부문장(부회장)이 8일 3분기 실적 발표 후 이례적으로 사과와 각오 메시지를 낸 것은 ‘삼성 반도체 위기론’ 확신을 조기에 불식하기 위한 특단의 조치로 분석된다. 전 부회장이 실적 부진에 대한 사과와 함께 반드시 재도약 계기를 만들겠다는 강한 의지 또한 드러낸 만큼 반도체 부문의 대대적 쇄신과 혁신이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재계에선 반도체 수장의 이례적 메시지가 과거 휴대폰 불량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휴대폰을 소각했던 ‘애니콜 화형식’에 비견되는 ‘반도체 화형식’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전 부회장은 8일 3분기 잠정실적 발표 이후 고객과 투자자, 임직원을 대상으로 “시장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과로 근원적인 기술 경쟁력과 회사의 앞날에 대해서까지 걱정을 끼쳐 송구하다”며 “모든 책임은 사업을 이끌고 있는 경영진에게 있으며 위기 극복을 위해 경영진이 앞장서 꼭 재도약의 계기를 만들겠다”는 메시지를 냈다.
삼성전자 수뇌부가 실적 발표와 관련해 별도 메시지를 발표한 것은 처음이다. 최근 주가 하락과 기술 경쟁력 우려 등 삼성전자를 둘러싸고 전사적인 위기감이 고조된 가운데 이 같은 상황의 엄중함을 인식하고 위기 극복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풀이된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전 부회장이 반도체 수장으로서 실적 부진과 주가 하락에 대한 책임을 절감하고, 위기 극복을 위해 온 몸을 던지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표명한 것”이라며 “지난 8월 사내 메시지에 이어 투자자·고객과 더 진솔하게 소통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재계에선 전 부회장의 사과와 각오가 ‘반도체 화형식’이라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삼성전자는 휴대폰 애니콜 불량 사태가 속출했던 1995년 경북 구미 공장에서 휴대폰 15만 대를 불태웠다.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이 “시중에 판매 중인 휴대폰 전량을 수거해 소각하라”고 지시한 데 따른 것이다. ‘애니콜 화형식’ 후 삼성전자는 51.5%의 점유율을 달성하며 한국 휴대폰 시장 1위에 등극했다. 재계 관계자는 “전 부회장이 이례적으로 사과와 각오 메시지를 낸 것은 이를 계기로 최고의 반도체 기업 위상을 되찾겠다는 강력한 의지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필리핀을 방문 중인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전날 로이터 통신에 실적 부진을 겪는 파운드리와 시스템LSI 사업과 관련해 “분사하는 데는 관심이 없다. 우리는 (파운드리) 사업의 성장을 갈망(hungry)하고 있다”고 밝힌 것도, 위기를 정면 돌파하겠다는 삼성전자의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해석된다.
전 부회장은 현재 당면한 위기 극복 방안으로 △기술의 근원적 경쟁력 복원 △보다 철저한 미래 준비 △조직문화와 일하는 방법 혁신을 제시했다. 전 부회장은 “기술과 품질은 우리의 생명이며 결코 타협할 수 없는 삼성전자의 자존심”이라며 “단기적인 해결책보다는 근원적 경쟁력을 확보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세상에 없는 새로운 기술, 완벽한 품질 경쟁력만이 삼성전자가 재도약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강조했다. 전 부회장은 또 “두려움 없이 미래를 개척하고, 한번 세운 목표는 끝까지 물고 늘어져 달성해내고야 마는 우리 고유의 열정에 다시 불을 붙이겠다”며 “가진 것을 지키려는 수성(守城) 마인드가 아닌 더 높은 목표를 향해 질주하는 도전정신으로 재무장하겠다”고 선언했다.
전 부회장은 또한 “투자자 여러분과는 기회가 될 때마다 활발하게 소통해 나가겠다”며 “우리가 치열하게 도전한다면 지금의 위기는 반드시 새로운 기회로 반전시킬 수 있다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이용권 기자 freeuse@munhwa.com
관련기사
주요뉴스
이슈NOW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