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노벨 물리·화학상이 인공지능(AI)을 연구한 학자들에게 돌아가면서 국내에서는 ‘AI 규제’를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AI 산업의 육성보다는, AI가 인간지능(HI)의 경계를 넘어서 작동한다는 불안감이 규제의 흐름에 힘을 실어주는 분위기다. 하지만 AI 기술 혁신과 산업 육성을 위한 글로벌 경쟁은 오히려 점점 더 가속화하고 있다. 그야말로 AI는 미래 국력을 좌우할 첨단 기술이기에 국가 전략의 차원에서 소홀히 할 수 없다. 결국 ‘규제와 육성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관건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제22대 국회에서 발의된 모두 11건의 AI 관련 법안을 보면, 이러한 균형을 잃은 것으로 보여 걱정스럽다. 이들 법안 모두 육성보다 AI의 안전성 확보 및 규제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어떤 법안은 AI 사업자에 대한 처벌 규정 법제화를 못 박고 있다. 고위험 AI 개발·금지 관련 의무를 위반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로 처벌 수위도 규정한다. 또, 다른 법안은 AI 사업자에 대한 ‘사전 검열’ 조항을 담고 있다. 현재 발의된 AI 관련 법안 대부분이 징벌적 과징금 부과에 방점을 둔 유럽연합(EU)의 ‘인공지능법(AI Act)’을 모델로 삼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이다.
제22대 국회가 AI 규제 일변도의 칼날을 휘둘러 아직 떡잎도 나오지 않은 국내 AI 산업의 싹을 자를지도 모른다는 우려마저 제기된다. 결국에는 산업 성장을 저해할 뿐만 아니라 소비자 편익까지 위축시키리라는 것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국제적 AI 패권 경쟁에 뒤지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물론 ‘컨트롤타워 설치’나 ‘인재 양성’ 등과 같은 AI 산업 육성 조항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전반적 방향은 규제로 흐르고 있다. 게다가 법인세 감면 등 실제로 산업 육성을 지원할 세제 혜택이나 보조금 지급 등과 같이 당장 필요한 방안은 거론조차 되지 않고 있다.
미국·중국·일본 등 주요국이 정부 주도 아래 대대적인 지원책을 펴는 등 AI 산업을 둘러싼 패권 경쟁이 심해지는 상황에서, 자칫 우리 스스로 발목을 잡는 규제를 남발하는 건 아닌지 묻고 싶다. 이들 국가도 모두 ‘AI 규제’를 언급하고 있지만 ‘규제 위주의 EU 모델’을 그냥 따라가는 건 아니다. 섣부른 AI 규제가 자국 산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지도 모른다는 계산이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지금은 AI 산업을 육성해야 할 때라고 판단하고 각기 나름의 묘책을 마련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도 좀 더 세련된 ‘규제와 육성의 균형 모델’을 모색해야 한다.
사실, AI 산업을 제대로 육성하기도 쉬운 일이 아니다. 지난달 26일 정부는 ‘국가AI위원회’를 출범시키면서 미국, 중국에 이은 ‘AI 3대 강국 도약’이라는 원대한 비전을 제시하고 이를 위한 ‘국가 총력전’을 선포했다. 우리의 AI 국가 경쟁력이 전 세계 6위 수준으로 평가되는 현실에서 ‘3대 강국’으로 도약하려면 본격적인 육성책이 필요하다. 그러나 강대국들이 AI 패권 경쟁에 발 벗고 나선 상황에서 이 목표 달성은 쉽지 않을 수밖에 없다. 안 그래도 힘든 게임을 치러야 하는데, ‘규제의 모래주머니’를 차고 경주에 나설 수는 없지 않은가. 바깥세상의 변화를 바로 읽고 좀 더 균형 잡힌 AI 전략의 프레임을 짜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