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어린이 책
들어와
민병권 글·그림│길벗어린이

표지에서부터 다짜고짜 늑대가 손짓한다. 뒤에 숨어 있는 다른 늑대들을 보니 꿍꿍이가 있어 보인다. 책장을 넘기면 늑대가 성큼, 앞에 와 있다. 속을 모르겠는 표정이 여전히 꺼림칙하다. 늑대는 찾아온 이들에게 단체 줄넘기의 규칙을 알려준다. 눈 감고, 땅 짚고, 박수 치고…, 할 것도 많다. “줄에 걸리거나 동작이 틀리면 죽어.” 포식 동물이 한 말이라 그런지 ‘죽어’가 심상치 않게 들린다.
그런데도 동물들은 홀린 듯 늑대를 따라간다. 늑대가 ‘놀자’고 했기 때문이다. 놀이에 매혹당하지 않을 어린이는 없다. 늑대는 줄 안에서 한 마리씩 탈락시킨다. 원숭이, 토끼, 펭귄, 뱀, 당나귀는 각자의 이유로 동작이 틀린다. 팔이 짧아 땅을 짚지 못하는 펭귄이나, 손발이 없어 박수를 못 치는 뱀은 억울할 일이다.
사실 놀이라는 게 그렇다. 공평하지가 않다. 누군가에겐 유리하고, 누군가에겐 불리하다. 익숙한 사람, 처음인 사람 섞여 한다. 거짓과 속임수를 쓰는 이들도 있다. 정직하게 줄넘기에 임하던 동물들은 모두 늑대 배 속으로 들어간다. 그들을 살리는 건 선 밖에서 지켜보던 ‘깍두기’, 새다. 새는 늑대가 말한 두 번째 규칙을 일깨운다. “누구라도 살면 다 같이 사는 거야.”
원숭이, 토끼, 펭귄, 뱀, 당나귀는 “늑대가 살았다!” 소리에 항문을 뚫고 나온다. 죽다 사니, 더 신나고 재미있다. 그런데 늑대는 애초에 왜 “누구라도 살면 다 같이 사는 거”라는 규칙을 세웠을까? 애써 부린 온갖 꼼수가 수포로 돌아갈 텐데. 어쩌면 늑대야말로 놀이의 이치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인물이 아니었을까?
끝나면 승자도 패자도 평등해질 것. 생사를 다툰 치열함 뒤에도 어린이들을 친구로 돌아오게 만드는 명확한 원칙 말이다. 44쪽, 1만4000원.
김다노 동화작가
주요뉴스
시리즈
이슈NOW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