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도경 사회부 차장

의정 갈등이 8개월째다. 의료 파행 여파는 통계로 수렴되고 있다.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난 지난 2∼7월까지 전국 의료기관에서 수술받은 소아암 환자 수는 지난해에 견줘 24% 줄었다. ‘빅5’ 병원으로 좁혀보면 32% 감소했다. 같은 기간 상급종합병원에서 시행된 6대 암과 희귀질환 수술도 각각 17%, 20% 줄었다. 전공의 집단사직으로 진료 역량이 줄어든 탓이다. 결국, 소아암 환아와 난치병 환자 등 우리 사회에서 가장 약한 이들이 피해를 봤다.

정부는 실책을 연발하고 있다. 최근 교육부는 의대 교육을 6년에서 5년으로 단축하는 방안을 검토했다가 이틀 만에 철회했다. 부처 간 협의 없이 갑자기 나온 안이었다. 발상도 상식적이지 않다. 의료계가 의대 증원을 반대한 이유는 의대 교육 부실화다. 의사 수를 늘려놓고 의사 배출 공백을 막기 위해 교육기간을 줄인다면 질 떨어진 의사가 나올 수밖에 없다. ‘의대 5년제’는 의료계 명분에 힘만 실어줬다. 정부가 불필요한 논쟁거리를 던진 셈이다.

땜질 대책이 사태를 꼬이게 만든 건 이번만이 아니다. 교육부는 의대생들을 복귀시키기 위해 많은 ‘예외’를 만들어냈다. 의대생들은 7개월 넘게 수업에 빠져 정상적으로 진급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집단 수업 거부가 불법이라면 집단 유급이 맞다. 휴학이든 유급이든 내년 의대 교육은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같은 결과를 두고 원칙이 무너지자 대학가에선 공정성 시비가 거세다.

아쉬운 대목도 많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7월 병원 복귀 여부와 상관없이 모든 전공의에게 행정처분을 하지 않기로 했다. 전공의 집단이탈을 불법으로 규정한 원칙과 각종 명령을 스스로 부정한 것이다. 원칙 훼손은 후유증을 낳고 있다. 전공의들은 요지부동이다. 원칙을 저버린 정부 얘기가 먹힐 리 없다. 불법행동이 처벌받지 않자 범죄행위는 죄의식 없이 자행되고 있다. 사직 전공의들은 환자를 살리겠다고 병원에 돌아간 의사들을 블랙리스트에 ‘박제’했다. 개인 신상을 알려준 조력자도 여럿이다. 일부 의사들은 구속된 사직 전공의를 위해 모금운동을 벌이면서 ‘표현의 자유’라고 두둔했다. 무법천지다. 전공의들에게 면죄부를 주지 않고 법에 따라 조치했다면 지금과는 많이 달랐을 것이다.

아마 정부는 다시 한발 물러설지도 모른다. 끝끝내 정부가 패배할 수도 있다. 환자 목숨을 볼모로 삼은 의사들을 이기기 쉽지 않아서다. 이젠 국민을 위한 개혁을 하려면 장관이 사과해야 하는 나라가 됐다. 정도에서 벗어나니 정부로서도 쓸 카드가 없다.

의사단체는 타협도, 대안도 없다. 현재 의료 파행은 증원된 의사 수천 명이 배출돼 생긴 문제가 아니라 의대 증원을 막기 위한 의사들 집단행동 탓이다. 정부에 저항하는 수단은 그 집단의 수준을 보여준다. 일부 병원에선 납득할 수 없는 사유로 중증환자 수용이 거부되고 있다. 태업도 조직적으로 이뤄졌다. 정부에 반발할 순 있어도 생명을 지키는 일에 최소한 금도는 있어야 한다. 약자의 희생을 딛고 선 강자는 존중받을 수 없다. 이번 사태가 의사의 승리로 일단락되더라도 국민은 낱낱이 기억할 것이다. 2024년 대한민국 의사들이 국민에게 어떤 모습을 보여줬는지를.

권도경 사회부 차장
권도경 사회부 차장
권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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