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학평론가 김형중 교수가 본 한강

“고통을 느끼도록 만드는 힘”


문학평론가 김형중(사진) 조선대 교수는 한강 작품의 가장 큰 특징으로 “읽고 나면 줄거리가 기억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결코 지울 수 없는 뉘앙스, 색채, 느낌을 진하게 남기는 작품이라 잊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고통을 알려주기보다 고통을 느끼도록 만드는 한강 소설만의 ‘마술적 수행’을 압축한 설명이다.

김 교수는 등단 후 초기 한강의 작품들은 작가 스스로 지닌 듯한 사적 차원의 트라우마를 다루는 소설이 주를 이룬다고 말했다. 여성의 욕망을 식물적 상상력으로 표현한 소설집 ‘내 여자의 열매’ 등이 대표적이다. “트라우마란 결국 말하기 힘든 것”이라고 정의한 김 교수는 “말로 할 수 없는 것을 문자로 표현하기 위해 한강은 문체 실험을 거듭해왔다”고 설명했다.

특히 2007년 발표해 한강에게 ‘한국 최초 맨부커상 수상작가’의 영예를 안긴 ‘채식주의자’에 이르러 문장 실험은 정점에 이른다. 김 교수는 작품에 대해 “한 호흡으로 읽어내기 어려울 정도로 묘사가 길게 늘어지는 문장을 통해 여성의 몸에 새겨진 가부장제의 폭력을 고발한다”고 말했다. 또한 “채식주의자에서부터 한강은 정체성을 공유하는 집단적 트라우마를 쓰기 시작했다”고 짚었다.

2014년 내놓은 ‘소년이 온다’에 대해 김 교수는 ‘최고의 작품’으로 꼽았다. “한강이 내놓은 작품 중 최고인 것은 물론 광주를 다룬 ‘5월 문학’ 중에서도 최고”라고 치켜세웠다. “역사적인 국가폭력이 만들어낸 트라우마에 눈을 돌렸다는 것은 한강 문학세계의 커다란 변곡점”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작품 속에서 이탤릭체로 반복 표현되며 여러 등장인물의 입을 통해 증언되는 ‘돌림노래’ 형식의 소설은 “5·18을 결코 끝나지 않는 노래로 만들겠다는, 5·18을 말하기보다 드러내려는 새로운 글쓰기”라고 평가했다.

2021년 발표한 최근작 ‘작별하지 않는다’에서 한강은 다시 한 번 제주 4·3사건을 소환하며 국가폭력을 이야기했다.

김 교수는 “이 작품은 4·3을 직접적으로 말하는 것보다 트라우마에 접근하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운지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작가는 피해 당사자가 아닌 이상 트라우마를 직접 그리는 일이 오만한 일인 것을 잘 알고 있다”며 “눈 속에서 사경을 헤매는 서술을 통해 작가도 목숨 걸고 표현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달한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소설 출간 후 한강이 ‘봄 같은 소설을 쓰고 싶다’고 말했던 것을 거론하며 “한 작가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문학의 의무는 고통을 재현하는 일이기에 지금과 같은 집필을 부탁하고 싶다”는 소망을 전했다.

장상민 기자 joseph0321@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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