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무용단 무용수들은 3차례의 ‘내가 물에서 본 것’ 공연마다 다른 동작을 선보인다. 사전에 맞춘 안무가 아닌, 당일 무대 위에서 보이는 우연성을 몸짓으로 표현한다.   국립현대무용단 제공
국립현대무용단 무용수들은 3차례의 ‘내가 물에서 본 것’ 공연마다 다른 동작을 선보인다. 사전에 맞춘 안무가 아닌, 당일 무대 위에서 보이는 우연성을 몸짓으로 표현한다. 국립현대무용단 제공


■ 국립현대무용단 ‘내가 물에서 본 것’ 17일 개막

바닥에 빈틈없이 붙은 셀로판지
13명이 한 장씩 뜯는 퍼포먼스
관객과 함께 변화의 순간 포착


시퍼런 셀로판지가 연습실 바닥에 빈틈없이 붙어 있었다. 피부를 벗겨내듯, 무용수 13명이 셀로판지를 한 장씩 뜯어내는 것으로 연습이 시작됐다. 셀로판지 위에서 한 발씩 옮길 때마다 파열음이 연습실을 채웠다. 스피커에서는 기계음만 흘렀고, 무용수가 타고 움직일 만한 리듬 소리는 따로 들리지 않았다. 철저하게 자신의 몸에 집중하도록 하기 위한 세팅이었다.

오는 17일 공연을 앞둔 국립현대무용단의 ‘내가 물에서 본 것’ 연습 현장. 작품 제목의 ‘물’은 ‘物’(물건 물)을 의미한다. 안무가 김보라는 12차례 시험관 시술을 경험하면서, 몸에 대한 시각을 바꿨다. 그는 “딱 정해져 있는 몸의 형태라는 것은 애초에 없었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라며 “사회 문화의 변화,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라 몸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지 않나요”라고 되물었다. 변화하고 있는 몸의 순간을 돌아보자는 메시지를 담은 공연이라는 것이다.

무용수가 머금은 물을 주르륵 흘리는가 하면 고인 물 위를 구르기도 한다. 갖은 방법을 써서 몸의 안과 밖을 느껴보고 싶다는 몸부림으로 보이기도 했다. 몸이 뜻대로 움직일 때가 있는 반면, 움직이고 싶은 대로 따라주지 않고 자신을 옥죄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 몸의 안과 밖, 이중성 등을 다 건드리고 싶다고 하는 이 공연은 일종의 ‘난장판’이다.



무대 바닥을 벗겨내는 퍼포먼스도 몸을 들여다보겠다는 메시지의 표현이다. 공연장 객석에서는 클래식 등 음악이 들리지만, 무대 위 무용수는 연습실 잡음과 기계음만 들으며 움직인다는 설정도 마찬가지. 이 설정은 김보라가 병원에서 의료설비 기계음과 대기실 클래식 음악을 뒤섞어 들을 수밖에 없었던 경험에서 따왔다. 공연에서 두 갈래의 소리는 뒤섞이게 된다. 몸의 내·외부 경계는 분명치 않으며, 관객이 그 지점과 순간을 느껴보도록 하겠다는 의도 또한 있다. “기술은 기술대로 발전할 거고, 우리는 그 기술과 함께 갈 수밖에 없겠죠. 다만 그 기술을 우리에게 접목하기에 앞서 자신들의 몸을 되돌아보기를 멈추지 않았으면 해요.”

김보라는 “가장 개인적인 이야기가 가장 사회적”이라고 강조했다. 얼핏 보는 일상은 지극히 개인적이다. 그러나 그 일상을 구성한 요소 하나하나 따져보면 사회 구조가 끼어들어 있고, 정치 문제가 연관돼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김보라의 시술 경험은 공연 모티브 정도로 그친다. 13명 무용수는 각자 자신의 몸에 대한 생각을 서로에게 이야기하며 움직임을 구성했다. 이들의 손목 흉터, 상처 위의 반창고, 혓바닥, 무릎 등 클로즈업한 사진들로 공연 팸플릿을 제작한 것도 그 연장에 있다. 공연은 서울 강서구 LG아트센터에서 19일까지.

‘닥쳐 자궁’ 창작진은 11월 17일 공연 직후 관객과의 대화 시간을 가질 예정이다. 국립현대무용단 제공
‘닥쳐 자궁’ 창작진은 11월 17일 공연 직후 관객과의 대화 시간을 가질 예정이다. 국립현대무용단 제공


■ 예술의전당 ‘닥쳐 자궁’

안무가의 10대 당시 경험 바탕
여성 정체성 관한 격렬한 표현


다음 달 15일부터 17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공연하는 ‘닥쳐 자궁’도 안무가의 신체 경험으로부터 나온 작품이다. 시모지마 레이사(下島禮紗)는 18세이던 2011년 “당신에게는 고환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을 들었다. 상상 못 했던 것의 존재 가능성, 당연히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의 부재 등을 겪으면서 ‘여성’이라는 정체성에 대해 격렬한 자각을 하게 됐다.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었던 체험으로 안무를 만들었다. 30분 분량으로 지난 2021년 한국 초연했던 작품인데 이번에는 60분으로 확장한 무대가 준비됐다.

초연 당시 3명이던 무용수도 9명으로 늘었고, 현대 음악을 판소리로 다시 해석하는 밴드 ‘이날치’의 베이시스트 장영규가 음악감독으로 합류했다.

서종민 기자 rashomon@munhwa.com
서종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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