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미 논설위원

포스트 한강, 한국문화 큰 도약
문학 비문학 해외 출간 붐 기대
자유로운 세계문학으로 비상해

서구 따라잡기 콤플렉스 탈출
외부인정에 목마른 시대 종언
한국문화 양식이 보편적 양식


“한강과 한국문학이 최대 화제가 될 거예요.” 세계 최대 규모의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오는 16∼20일) 참가차 출국 길에 전화를 받은 저작권 에이전시 대표의 목소리는 들떠 있었다. 한국문학이 변방 중의 변방이던 시절부터 한국문학 저작권 수출을 해온 그는 한강의 노벨상 수상이 만들어낼 결과에 흥분했다. 한국문학에 대한 전 세계 러브콜은 물론 인문·역사 등 한국 논픽션도 세계 독자를 만날 것으로 기대했다. 소설이란 서사를 통한 인간과 세상에 대한 해석과 철학, 가치와 신념의 집합체인 만큼 관심이 인접 분야로 확대될 것이라고 낙관했다.

그의 기대가 현실이 될지, 얼마나 빨리 어느 정도 이뤄질지 쉽게 예측할 수 없지만, 이 생각만큼은 분명했다. 한국 문학·문화는 B.H(Before Han), 즉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 이전과 이후로 나눠질 것이다.

B.H, ‘한강 수상 이전’ 시대 상징이라면 ‘노벨 문학상 캠페인’이 있다. 프랑스 문학연구자 파스칼 카자노바는 연구서 ‘세계문학공화국’에서 노벨 문학상은 ‘세계문학’이라는 공화국에서 통용되는 공인서이자 확정 평결이라며 이를 얻기 위해 애쓰는 나라로 한국을 꼽았다. 노벨상에 집착해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고 했다. 다분히 비서구 문학을 낮춰 보는 서구 중심적 시각이지만, 한국이 노벨 문학상에 목숨을 건 건 사실이었다. 2010년 초까지도 올림픽 금메달을 따듯 될 만한 작가의 작품을 집중 번역해 주요국에 출간하며 민관이 총력을 기울였다. 높은 권위의 노벨상은 한국, 때론 정권의 국제 인증으로 여겨졌다. 그래서 모두 김칫국을 마시며 노벨상 발표날 기자들은 후보 문학인 집 앞에 진을 치고 밤을 새웠다.

하지만 B.H에 이런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한강 작가가 노벨상위원회와의 인터뷰에서 “내가 매우 가깝게 느끼고 있는 한국문학과 함께 자랐다”고 밝혔듯 2024년 그의 수상에 이르기까지 한국문학은 성취를 차곡히 쌓았다. 노벨상위원회가 주요 수상 이유로 꼽은 역사적 고통과 시적 문장은 한국 소설의 오랜 전통의 일부다. 또, 죽은 자를 호명해 말하게 했다며 서구 문학의 원형인 고대 그리스 비극 ‘안티고네’로 연결시켰지만, 산 자와 죽은 자의 대화는 한국, 한국인의 문화에선 낯설지 않다.

‘한국어’라는 소수어를 쓰는 한국문학이 넘어야 할 장벽인 ‘번역’에서도 지난 40여 년간 많은 성과를 일궜다. 한국문학 번역은 1968년 일본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노벨 문학상 수상에 자극받아 1970년대부터 본격 시작돼 몇 번의 드라마틱한 도약을 만들어냈다. 예를 들어 2010년,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가 미국 크노프 출판사에서 초판 10만 부로 출간돼 영미권 베스트셀러가 된 일이다. 이에 힘입어 한국 소설이 잇따라 번역됐고 한강의 부커상 수상이라는 대도약으로 이어졌다. 결과적으로 번역서가 3% 미만인 미국 책 시장에서 한국 소설은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여기에 ‘파친코’ 등 한국계 미국 작가들의 약진이 더해졌고, 무엇보다 대문자 ‘K’로 호명되는 한국문화가 가장 ‘힙’한 문화로 떠올랐다. 이 모든 일이 인과고리를 만들고 시너지를 일으키다 한강의 노벨상 수상으로 정점을 찍었다.

무엇보다 최근 몇 년간 문화적으로 자신감이 붙으면서 문화계에서 서구 중심의 노벨상이라면 받으면 좋겠지만 안 받아도 괜찮다고 생각하기에 이른 시점에 수상한 것도 의미 있다. ‘노벨상 캠페인’이 상징하듯 우리는 늘 세계라는 타자, 정확하게는 서구의 인정에 목말라했다. 식민, 전쟁, 분단, 독재와 민주화로 근대화를 포함해 늘 당대의 과제를 제대로 마치지 못한 탓에, 급속한 성장으로 세계 10위권 선진국에 이르렀지만 우리는 늘 콤플렉스에 시달려왔다. 유난히 ‘국뽕’에 휘둘린 이유이기도 했다.

한강의 수상은 한국문화가 부모의 인정에 목말라하는 청소년기를 지나 성인이 되는 성인식이기도 하다. 카자노바의 말대로 한국문학은 이제 세계문학 공인서, 세계문학 시민권을 받았다. 한 평론가는 한국어가 통용 가능한 언어라는 인증이라고도 했다. 익숙한 우리 문화 양식과 사유가 인류 보편적 양식으로 읽힌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국문학, 한국문화는 의식·무의식적으로 목표한 서구 따라잡기에서 벗어날 자유를 얻었다. 더 높이 날아오를 일만 남았다.

최현미 논설위원
최현미 논설위원
최현미

최현미 논설위원

문화일보 /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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