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준 국방대 국가안보문제연구소장

20년 전부터 강한 자위대 주장
아베·기시다 거치며 적극 반영
최근 아시아판 나토 구상 피력

괌에 전술핵-자위대 배치 방안
11월 美 대선 뒤 논의될 가능성
한국도 적극적 활용 검토해야


국내 안보 전문가 중 다수가 11월 5일 미국 대통령 선거의 결과가 한미동맹이나 국제 안보 질서에 미칠 영향에 대해 여러 가지 분석을 내놓고 있다. 그런데 한국 안보정책에 대한 영향이라는 측면에서 이달 초 취임한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일본 총리의 안보정책 구상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시바 총리는 일본 정치인들 가운데서 안보정책에 관해 가장 전문적인 식견과 경험을 가진 인물 중 한 사람이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정권 시기이던 2002·2004년에는 방위청 장관도 지내면서 실제 정책 경험을 쌓았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국방’이란 책도 집필한 바 있다.

2005년에 발간한 저서 ‘국방’에서 그는, 제국주의 시대의 일본과 달리 현대 일본에서 군에 대한 민간 통제를 관철하기 위해서는 민간 정치인들이 군을 잘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강력한 자위대를 건설하는 것이 억제 태세를 강화하는 것이고, 전쟁을 방지하는 중요한 방책임을 역설했다. 이 같은 입장에서 2000년대 초반부터 그가 강력하게 추진했던 안보정책은 ‘집단적 자위권’의 실제적 행사와 ‘적기지 공격능력 보유’였다. 당시로서 이 같은 정책 구상들은 기존 일본 안보정책의 범주를 벗어나는 것으로 간주돼 수용되기 쉽지 않았다.

그러나 2014년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부가 ‘집단적 자위권’ 행사 방침으로의 전환을 선언했고, 2022년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내각은 국가안보 전략서를 통해 ‘적기지 공격능력’ 개념을 반영한 ‘반격능력’ 보유를 명문화하기에 이르렀다. 이시바 총리는 아베 전 총리와 정치적으로 줄곧 대립각을 세워 왔으나, 보통국가론적 안보정책 추진에서는 적극 공조하면서 일본의 안보정책 변화를 주도해 왔다.

이시바 총리는 이제 그가 방위청 장관으로 재직했던 시기보다 엄중한 안보 환경에 직면하게 됐다. 자민당 총재 선출 직후인 지난 9월 말, 미국 허드슨연구소에 기고한 글을 통해 그는 북한 및 중국의 핵능력 강화, 그리고 러시아와 북한의 군사동맹 체결 상황에서 미국이 일본에 제공하는 확장억제 태세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안보 불안감을 보였다. 이 같은 안보 상황에 대응해 그는 ‘아시아판 나토(NATO)’의 결성 및 미국과의 핵공유 체제 구축이라는 새로운 안보정책 구상을 제시한다.

‘아시아판 나토’ 구상은 미국 외에 캐나다, 호주, 필리핀, 인도, 프랑스, 영국, 한국까지 포함하는 국가들과 준동맹 관계를 구축하자는 것이다. 이미 일본은 한국을 제외한 이들 국가와 외교 및 국방 관련 장관들이 참가하는 2+2회담 체계를 가동하면서 인도·태평양 전략을 공유하는 안보협력 관계를 맺고 있으므로 ‘아시아판 나토’ 구상이 비현실적인 것은 아니다. 다만, 그 실현에는 상당한 기간이 소요될 것이다.

한국이 주목해야 할 점은 미국과의 핵공유 및 전술핵 재배치에 관한 그의 구상이다. 사실, 아베 전 총리도 그의 사망 직전인 2022년 5월 ‘분게이슌주(文藝春秋)’에 기고한 글을 통해 나토식 핵공유 구상을 제안한 바 있어, 이 구상이 자민당 내 중진들 사이에 어느 정도 공감대를 이룬 것으로 보인다. 허드슨연구소 기고문을 볼 때 이시바 총리는 일본이 견지해 온 비핵 3원칙을 고려해 미국령 괌에 전술핵을 배치하고, 일본 자위대를 괌에 주둔시키는 방식으로 미·일 핵공유 체제를 구현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구상은 11월 대선을 통해 미국의 차기 대통령과 행정부가 출범한다면 미·일 간의 외교적 어젠다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시바 총리발 파격적인 안보정책 구상은, 캠프데이비드협정 이후 한·미·일 안보 협력 태세를 구축하면서 한·미 간 핵협의그룹(NCG) 체제를 통해 확장억제 태세를 강화해 온 한국에 새로운 과제를 던져준다. 국내에서도 일부 싱크탱크와 전문가들 사이에서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 아래서 우리나라가 추구할 수 있는 현실적인 핵정책의 하나로 나토식 핵공유론이 제안된 바 있기도 하다. 글로벌 핵확산금지 질서의 동요 속에서 더 고도화하는 북핵 능력을 억제하기 위해 이시바 총리의 새로운 안보정책 구상을 한·미·일 공동 핵억제 태세의 일환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할 때다.

박영준 국방대 국가안보문제연구소장
박영준 국방대 국가안보문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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