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노벨상 보유’ K - 문학의 미래를 보다 - <中> ‘글의 맛’ 살리는 번역의 힘
국내외 출판사 연결 에이전시들
경연까지 열며 새 번역가들 찾아
한국문학번역원, 출판에 더 초점
해외번역가 육성 상대적으로 소홀
극소수 비문학 번역가 지원 절실 中>

소설가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마침내 한국문학이 번역의 힘을 바탕으로 세계로 나아갔다는 의미를 갖는다. 앞서 봉준호 감독이 영화 ‘기생충’으로 미국 아카데미와 골든글로브, 칸국제영화제를 휩쓸며 ‘1인치라는 자막의 장벽’을 넘었다면 소설가 한강은 데버러 스미스, 피에르 비지우, 최경란 등의 번역가와 함께 ‘번역의 장벽’을 넘어섰다.
최근 한강 작가의 수상 소식과 함께 한국 소설을 사랑한 다양한 번역가가 주목을 받는 가운데 출판 에이전시 사이에서는 새로운 번역가의 발굴을 위한 다양한 시도가 돋보인다. 출판사 읻다의 대표 김현우가 운영하는 에이전시 나선에서 진행하는 ‘번역대회’가 대표적인 사례다. 국내와 해외 출판사를 연결하는 에이전시를 운영하는 김 대표는 “보통 번역 출간의 경우에는 좋은 책이 있다면 해당 출판사에서 에이전시를 통해 판권을 사고 번역가를 찾아서 출간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과정인데 이때 해외에서 번역을 진행할 수 있는 다양한 번역가가 필요하다”며 “이 때문에 고안한 것이 바로 해외 현지에서 ‘번역대회’를 열어 실제로 한국 문학에 관심이 있는 번역가들을 찾아내는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지난 2011년 일본에서 한국 문학을 알리기 위해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를 출간한 출판사 쿠온의 김승복 대표 또한 벌써 8년째 번역대회를 이어오고 있다. 출판사와 에이전시를 함께 운영하는 그는 “대회에서 우승한 번역가는 책을 바로 출간할 수 있도록 해 실제 번역가 발굴과 육성을 도모했다”며 “K-문학의 붐 속에는 이런 재미있는 행사와 노력이 있다는 것을 알아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런 번역 대회는 최근 좋은 성과로 이어지고 있다. 쿠온에서 개최한 번역대회의 경우 1회 수상자인 마키노 미카 번역가가 이후 황보름의 장편소설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일본어판을 번역 출간했다. 책은 올해 일본 서점 대상에서 번역 소설 부문 1위를 차지하는 등 열띤 반응을 얻었다. 에이전시 나선 또한 지난해 열었던 번역대회를 바탕으로 내년에는 프랑스와 독일에서 다시 한 번 번역대회를 열 예정이다. 지난해 번역대회는 참가 인원만 50명에 달할 만큼 큰 관심을 받았고 김소연 시인과 오은 시인의 시집 원고를 바탕으로 한 대회에서 발굴한 번역가 마를라 코흐는 이후 베를린자유대 한국학과 박사 과정을 밟으며 한국 소설 번역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김현우 대표는 “독일에서 이번에는 소설 작품을 바탕으로 대회를 열어보려고 한다”며 “소설 번역에는 얼마나 많은 이들이 찾아올지 벌써 기대가 된다”고 밝혔다.
이처럼 중소형 출판사가 번역대회 등을 통해 해외 번역가 육성에 직접 나서는 배경에는 한국문학번역원 등이 번역가 육성보다는 번역 출판 지원에 초점을 맞춘 영향도 있다. 이에 대해 김승복 대표는 “1회 대회의 경우 번역원도 함께 참여했었는데 어찌 된 일인지 이후에 번역원과 함께 진행할 수 없게 됐다”며 “단순 지원이 아닌 민간에서 진행하는 행사에 기관이 참여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평가했다.
그럼에도 대형 출판사를 중심으로 한 해외 출간은 이제 본궤도에 올랐다는 평가가 나온다. 해외 5대 출판사로 꼽히는 아셰트, 펭귄 랜덤하우스, 맥밀런, 하퍼콜린스, 사이먼앤드슈스터 등과 계약을 성사시킨 에릭양 에이전시의 양윤정 차장은 “판권 문의는 늘 우리가 먼저 하던 거였는데 이제 반대인 상황이 종종 발생한다”며 “이제는 우리 책을 해외에 팔아야 할 때가 왔다”고 설명했다. 2010년 ‘채식주의자’가 국내 처음 출간된 후 5년에 걸쳐 소설의 해외 출간을 이뤄낸 이구용 KL매니지먼트 대표는 “(‘채식주의자’의 첫 해외 출간) 당시와 비교하면 지금 한국문학의 번역과 출간은 어느 정도 시스템이 갖춰졌다”며 “지금 대형 출판사의 경우에는 해외 출판사와의 네트워크도 활성화돼 있고 출간 또한 원활한 상황이다. 다만 중소형 출판사의 경우에는 해외 출간과 관련된 실무를 담당할 인원이 부족한 만큼 이런 인력 양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 대표는 “이제는 비문학까지도 번역해 해외에 출간할 수 있으면 좋겠다”면서 “비문학 저서를 번역할 수 있는 번역가는 현저히 적은 상태인 만큼 이를 적극적으로 키울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신재우 기자 shin2roo@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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