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벨상 보유’ K - 문학의 미래를 보다 - 정은귀 교수, 번역 중요성 강조

지원예산 감소 안타까움 표명도


“한강 작가의 소설은 시적 글쓰기입니다. 한 줄, 한 줄 힘겨운 창작의 시간을 보낸 뒤에 쓴 글을 번역하기 위해선 번역가도 그 시간만큼 창작의 고통을 느낀 후에야 간신히 해낼 수 있죠.”

이성복, 심보선, 황인찬 시인 등의 시집을 영어로 번역한 정은귀(사진) 한국외대 교수는 14일 문화일보와의 통화에서 한강 작가의 글쓰기와 그것을 번역해내는 일에 대해 이처럼 말했다. 정 교수는 2020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시인 루이즈 글릭의 전집을 번역해낸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는 문학 번역을 “원작에 다리를 만들어 새로운 세계로 이어주는 일”로 정의했다. 그렇기에 “동일한 원전이라도 어떤 번역가를 만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작품으로 읽힐 수 있다”며 번역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정 교수가 처음 한국시를 번역한영어로 옮겼던 건 미국에서 유학 생활을 하던 때 2000년이다. “지도교수님이 한국 현대시에는 어떤 것들이 있느냐고 묻는데 영어로 번역된 게 많지 않았어요. 분명 한국어로 된 좋은 시는 너무 많은데, 그 질문에 답하려고 번역을 시작했죠.” 그렇게 신경림, 김수영, 김지하 등의 시를 샘플 번역했다.

어느덧 베테랑 번역가가 됐지만 한국문학을 번역하는 일은 여전히 쉽지 않다. 정 교수는 “교수인 나조차 번역한 뒤에도 출간할 기회를 갖지 못해 쓰다듬기만 해야 하는 원고가 많은데, 이제 막 번역을 시작한 번역가들의 사정은 어떻겠냐”고 말했다. 소수어인 한국어로 쓰인 시와 소설이 한국문학번역원의 지원 사업에 선정되지 않으면 시장에 출간되기 어려운 현실을 지적한 것이다. “열악한 상황에서 지난해에도 번역지원 사업 정부 예산은 감소했다”면서 “좋은 책을 볼 때마다 열정적으로 번역에 뛰어드는 새로운 번역가들이 한영 번역에 집중하며 작업할 수 있는 환경까지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진단했다. “독자들이 이름을 들어보지 못한 새로운 번역가들의 번역 작업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미 좋은 문학 원전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한국이 적극적으로 번역가를 발굴할 수 있는 정책적 시도를 할 수 있다면 제2, 제3의 노벨상도 충분히 가능합니다.”

장상민 기자 joseph0321@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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