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주담대 금리 인상 역주행 정부 주택대출 규제 압박 여파 이자 감소 등 내수 부양도 의문
관치금융이 금리 시스템 망친 탓 한은 금리 인상·인하 모두 실기 정부·한은 대출 관리 공동 책임
기준금리 인하를 맞은 금융시장이 요지경이다. 앞서 내린 은행의 예금 금리는 꼼짝 않고, 대출 금리는 되레 오르는 역주행이다. 실제 4대 은행의 주택담보대출(주담대) 금리는 금융통화위원회가 기준금리를 연 3.25%로 내린 지난 11일 연 3.81∼5.73%(혼합형)에서 15일엔 연 3.99∼5.78%로 올랐다. 은행들이 대출 이자에 붙는 가산금리를 더 올린 결과다. 이는 정부가 집값을 안정시키려고 대출을 압박하기 때문이다. 금융 당국은 11일 시중은행 회의에 이어, 15일에는 대출 규제의 풍선효과를 막으려고 2금융권 회의도 열었다. 주요 은행들은 이미 올 대출 목표액을 넘겨 대출 금리는 향후 더 오를 가능성이 크다.
이런 이유로 금리 인하의 실효가 없다는 무용론이 제기된다. 기준금리 0.25%포인트 인하로 자영업과 가계의 연간 이자 부담이 많게는 6조 원, 적어도 3조 원가량 줄 것이란 전망이 나왔지만, 대출 금리가 동반 하락하지 않으면 탁상공론일 뿐이다. 같은 맥락에서 내수 부양 효과도 회의적이다. 금리 인하 효과는 장기적으로 봐야 하지만, 지금대로라면 달라질 게 없다.
금융시장이 뒤죽박죽되면서, 기준금리의 시장 금리 가이드 역할도 상실했다. 미국의 피벗(통화정책 전환)으로, 진작에 예상된 금리 인하가 선(先)반영됐다고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관치금융이 화근이다. 관치금융이 시장 금리 시스템을 망친 결과다. 정부의 저금리 정책대출 실책의 여파를 거듭 실감하게 된다. 청년과 신혼부부를 지원하는 특혜성 정책대출을 잘못 설계하고 운영했던 것이 금융시장의 혼돈을 부른 것이다. 금융을 모르는 국토교통부에 디딤돌·버팀목 등 정책대출을 맡긴 것부터가 잘못됐다. 금융위원회의 방관과 함께, 완장을 찬 금융감독원이 금융시장 위에 군림하며 ‘샤워실의 바보’ 같은 추태까지 보이다 결국 사과해야 했던 것은 관치의 정점이었다.
그런 점에선 이창용 한은 총재가 ‘금리 인하 실기’ 비판을 거부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렇지만 최근 국회 국정감사에서 이 총재도 시인했듯이 한은도 책임이 있다. 금리 인하 실기론은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제안대로 지난 5월이나 8월에 금리를 내렸다면 끝났을 문제가 아니다. 묘하게도 그 한참 전에 금리를 안 올렸던 게 발단이다.
가계대출·주담대 급증은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한은이 월·분기·연간 데이터를 들여다봤을 게 틀림없다. 금융시장 안정에 책임이 있는 한은은 주담대발(發) 시장 교란이 예상되고, 더구나 고물가인 상황에선 성장에 부담이 되더라도 진작에 금리를 올렸어야 했다. 심지어 미국이 ‘빅스텝’을 계속 밟는데도 한은은 지난해 2월 이후 금리 동결만 했다. 그러면서도 금융시장을 망가뜨린 저금리 정책대출엔 제동을 걸지도 않았다. 한은은 제때 금리를 안 올렸던 탓에 그동안 금리를 내릴 수도 없는 딜레마에 스스로 빠졌던 것이다. 1년 뒤에 평가해 달라는 이 총재의 발언이 생뚱맞은 자기변명으로 들린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금리 인하 후속 대책은 다각적으로 강구돼야 한다. 우선, 주담대 관리는 피할 수 없다. 그렇더라도 자영업·서민 가계대출은 주택대출과 분리해 금리 인하 훈풍이 미치도록 세부적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 정책대출은 전면 쇄신해야 한다. 30대 이하 청년·신혼부부 지원이 한 채에 수십억 원 하는 강남·용산 아파트 매입으로 이어지는 것은 당초 취지와도 안 맞는다. 또, 전세대출은 몰라도 정책대출이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적용을 안 받는 것은 손봐야 한다. 정책대출 운영·관리는 새 수장을 맞은 금융위나 기획재정부 등이 총괄토록 바꿔야 옳다.
무엇보다 금리 시스템을 빨리 정상화해야 한다. 앞으로 금리를 추가 인하한들 금융시장이 지금처럼 뒤죽박죽이면 소용없다. 아울러 정부와 한은의 공조는 더 강화되고, 더 정교해져야 한다. 특히, 한은은 제 목소리를 내야 한다. 대통령실의 의중이 어떻든, 한은이 주택대출에 관한 한, 적정성을 놓고 정부와 의견이 대립하거나, 더 나아가 충돌하더라도 감수하고 마땅히 제 역할을 해야 한다. 한은이 대책을 내는 행정부처는 아니지만, 사전 경고를 하는 것은 본연의 책무이고, 전통적인 역할이다. 경제·금융 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가야 민생 경제도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