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15일 우리 예산을 지원해서 건설한 경의선·동해선 남북 연결 도로를 폭파했다. 4년여 전 개성공단 남북연락사무소 ‘폭파 쇼’를 벌여 선전 도구로 활용한 것과 비슷한 폭파 이벤트다. 당시 450억 원에 이르는 우리 소유의 부동산이 전파됐고 금강산 관광단지 우리 측 시설물도 폭파를 피하지 못했다. 시설 폭파는 공산당이 사용하는 전형적인 충격 조치다. 북한의 파괴 공작은 몇 가지 안보·정치적 함의가 내포돼 있다.
우선, 북한이 경의선·동해선 남북 연결도로를 폭파한 것은 남북 사이 육로를 완전히 끊고 요새화하는 공사의 일환이다. 앞으로 콘크리트 장벽을 세워 철저하게 ‘모기장’을 칠 것이다. 북한은 지난해 말 김정은의 적대적 두 국가론 선언 이후 남북 육로 단절을 위해 도로 주변 지뢰 매설과 가로등 제거, 철로 제거, 인접 부속 건물 철거 등을 진행해 왔다. 평양은 우리 예산 1800억 원이 투입된 도로를 비무장지대 10m 앞에서 무단 폭파하는 극적인 장면을 김정은이 현장에서 지켜보는 가운데 연출했다. 대남 압박 효과의 극대화를 노렸다.
둘째, 북측은 미군에 사전 통지했고 폭파 쇼가 자기 영역에서 진행돼 남측이 관여할 바가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문제는, 도로가 어떻게 건설됐고 누구의 돈으로 건설됐느냐 하는 점이다. 지난 2000년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의 첫 정상회담 이후 남북은 경의선과 동해선 철도 및 도로 연결에 뜻을 같이했고, 2002년 9월 착공식을 했다. 이후 노무현 정부는 경의선과 동해선 철도·육로 연결 사업에 현물 차관을 지원했다. 그 규모는 2002∼2008년에 걸쳐 1억3290만 달러(현재 환율 기준 약 1800억 원)이다. 북측은 겉으로는 남측 자금으로 위장 평화를 전개했지만, 속으로는 핵무기 개발을 가속했다.
문재인 정부는 북의 6차례 핵실험에도 불구하고 2018년 9월 남북 평양공동선언을 추진했다. 평양의 대남 적화통일 전략이 불변이고, 핵무기가 급증하는 현실에서 9·19 공동선언은 ‘외눈’ 정책이었다. 철도·도로 연결 착공식을 시작으로 항만 건설 등 수십조 원에 이르는 인프라 건설 지원을 구상했다. 그나마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로 문 정부의 퍼주기 복안이 실현되지 못한 것은 천만다행이다. 도로 연결 자금이 ‘차관’이나 북한은 지금껏 이 돈을 갚은 적이 없다. 더욱이 우리 국민의 혈세가 들어간 기반 시설을 비가역적으로 폭파해 버렸다.
셋째, 경의선과 동해선 도로·철도는 우리 예산이 투입됐고 그 파괴가 남북 상호 존중과 신뢰의 토대를 훼손하는 행위라는 점에서 과거 이 사업을 추진한 당국자들은 자신들의 오판을 반성해야 한다. 국회가 관련 사업의 청문회를 열어 우리 국민의 혈세가 무분별하게 투입된 경위를 분명히 밝혀내야 한다.
끝으로, 남북 도로 연결 폭파 쇼 이후 도발에 대한 효율적인 대응이 중요하다. 적대적 두 국가론 지침과 평양 상공의 방공망을 뚫은 무인기에 대한 반발에 따른 북의 군사 도발 시나리오는 다양하다. 단순 오물풍선 투하 수준을 넘어설 것이다. 김정은이 처음으로 소집한 평양판 국가안보회의(NSC)는 예사롭지 않다. 야전군 책임자 외에 군수·정보 기관 책임자까지 참석한 만큼 군사 모험이 11·5 미국 대선을 앞두고 자행될 가능성을 예의 주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