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봄 금(金)사과에 이어 이번 가을엔 금배추가 장바구니 물가를 흔들었다. 한 통에 2만 원까지 치솟으며 배추 사러 마트 문 열자마자 달려가야 하는 ‘오픈런’이 연출됐고 포장김치는 금방 동나서 인터넷 주문이 취소되기 일쑤였다. 배추김치 대신 양배추김치를 올리는 식당까지 나오기 시작했다. 정부가 부랴부랴 중국산 신선 배추까지 들여오고 나서야 가격 상승세가 주춤해졌지만, 지난해 같은 기간과 견줘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조사 결과, 배추 한 포기 소매 가격은 지난 11일 8796원으로 평년 가격(6444원)보다 36.5%나 비쌌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출하장려금 지원으로 준고랭지 배추와 김장 배추를 조기 출하하도록 유도하고 이를 통해 이달 내 평년 가격 수준으로 회복시키겠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당장 다음 달 김장을 계획하고 있는 소비자들의 마음은 여전히 불안하기만 하다. 배추 대란의 원인은 올여름 내내 전례 없이 이어진 고온과 9월 들어 내린 집중호우로 배추 생육이 부진해져서다. 배추는 서늘한 기후를 좋아하는 저온성 채소로 생육 최적온도는 20도 안팎이다.
문제는 이 같은 이상기온으로 인한 수확 감소 채소가 비단 배추에 그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한국맥도날드는 토마토를 안정적으로 공급받기 어려워 15일부터 한시적으로 일부 햄버거 제품에서 토마토를 빼기로 했다고 공지했다. ‘토마토 없는 버거’의 원인 역시 예상 밖 기후변화다. 정부 통계에 따르면 이달 상순 도매시장 토마토 반입량은 평년보다 43%나 줄었다. 토마토 출하량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전북 장수군 등 여러 산지에서 여름내 고온으로 열매가 달리는 착과가 불량했고, 여기에 설상가상으로 이달 들어 기온이 뚝 떨어지며 익는 시기까지 늦춰졌다. 사과 한 알 가격이 1만 원에 달했던 올 초 사과 파동 역시 개화기 사과꽃 냉해에서 비롯됐었다. 기후변화가 몰고 온 식량위기는 이처럼 현실이 되고 있다. 농촌진흥청 예측에 따르면 2050년대면 국내 고랭지 배추 재배 면적의 97%가 사라질 전망이다. 재배지가 대구에서 계속 북상 중인 사과의 경우 2100년이 되면 강원 일부 지역에서만 볼 수 있다는 관측마저 나온다. 지금 당장이야 국산 김치 대신 중국 김치가, 배추 대신 양배추가, 사과 대신 망고나 바나나가 우리 식탁을 메울 수 있다지만 이상기후가 ‘뉴노멀’이 되는 머지않은 미래에는 임시방편만으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미 식량주권, 식량안보를 둘러싼 총성 없는 전쟁이 전 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세계 최대 식량 수입국인 중국은 6월 식량안보를 명문화한 ‘식량안전보장법’을 제정했다. 우리나라는 세계 7위의 곡물 수입국이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2050년까지 식량 생산량이 최대 30% 감소하고 이에 따라 식량 가격이 최대 50% 상승할 가능성이 있다는 보고서를 내놨다. 발등의 불을 끄는 데 급급할 게 아니라 기후변화 예측 고도화, 품종과 재배·저장기술 개발 등 ‘기후플레이션’(기후변화+인플레이션)에 대비한 정교한 대책 확보가 시급하다. 특히, 기후위기를 우리 농업 발전의 기회로 삼을 수 있는 방안도 적극적으로 마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