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책 ‘오픈런’은 남의 나라 일인 줄 알았다. 지난해 4월 무라카미 하루키가 6년 만에 장편 ‘거리와 그 불확실한 벽’을 출간한 날, 일본 대형 서점 앞엔 개점 한참 전부터 긴 줄이 섰다. 드디어 서점 문이 열렸고 독자들이 하루키 신작을 손에 든 뒤 환호하는 장면은 우리 방송 뉴스로도 전해졌다. 학교를 빠지고 직장에 휴가를 내고 온 이도 있었다. 하루키 오픈런은 이미 익숙한 풍경이다. 2009년 하루키의 장편 ‘1Q84’, 2013년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와 2017년 ‘기사단장 죽이기’가 나온 날도 마찬가지였다. 하루키스트들은 서점 앞에서 기다렸고, 발매 첫날 일본 서점 관계자의 말처럼 책은 ‘빛의 속도’로 팔려나갔다.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으로 한국에서도 오픈런이 벌어졌다. 그의 책은 노벨상 발표 닷새 만에 100만 권 넘게 팔렸다. 하루 평균 20만 부씩 팔려나간 셈이다. 인터넷 서점에서는 1분당 136권이 판매됐다는 계산도 나왔다. 주요 서점 베스트셀러 1∼10위를 한강 작품이 싹쓸이해 인기 가수들만 한다는 차트 ‘줄 세우기’도 벌어졌다. 작가의 주요작인 ‘소년이 온다’ ‘채식주의자’ ‘작별하지 않는다’ ‘흰’뿐 아니라 그의 전 작품이 두루 판매되고 있다. 1993년 시인으로, 1994년 소설가로 등단한 한강은 이제까지 약 20종의 책을 냈다.
부커상 수상작 ‘채식주의자’는 노벨상 이전에 100만 부 이상, ‘소년이 온다’ 등도 수십만 부가 팔려 이미 기존 소설 독자들은 대부분 읽었다고 추정한다면, 이번에 새 예비 독자들이 대거 들어왔다. 단기간에 수십만 한국인이 같은 텍스트를 읽고 같은 세계를 공유하는 집단적 문화 체험을 하는 중이다.
한국문학은 2000년대까지만 해도 100만 부짜리 베스트셀러가 늘 존재했다. 김훈 ‘칼의 노래’(2001), 신경숙 ‘엄마를 부탁해’(2008), 공지영 ‘도가니’(2009)가 있었고, 좀 더 대중적인 작품들은 400만∼500만 부씩 팔렸다. 이제는 책 인구가 줄어들면서 유명 작가 작품도 10만∼20만 부 판매가 쉽지 않다. 한강 오픈런이 한 차례 휩쓸고 지나가는 열풍이 아니라 소설·문학·책 읽기의 전기가 되기를 바라는 이유다. 이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 우리 작가들이 신작을 내는 날 서점 앞에 긴 줄이 서는 장면을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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