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K-영풍이 고려아연 주식 공개매수를 기습적으로 시도하며 촉발된 경영권 분쟁이 벌써 한 달을 넘어서 장기화하고 있다. 울산연구원 소속의 중국 지역 통상 전문가로서 이 사태를 바라보는 필자의 입장은 우려를 넘어 절체절명의 초조함에 가깝다. 글로벌 공급망에서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산업의 중요성, 첨단 산업에 있어 산업 안보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아는 전문가로서, 국가적으로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오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함 때문이다.
고려아연이 공급하고 있는 최고 품질의 다양한 소재 중에서도 반도체 황산의 중요성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반도체 황산은 반도체 웨이퍼 세정에 필수이며, 반도체 수율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케미컬이다. 고려아연은 글로벌 반도체 시장의 키 플레이어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반도체용 고순도 황산을 공급한다. 국내 연간 약 38만t의 반도체 황산 시장에서 고려아연이 공급하는 물량은 24만t에 이른다.
고려아연은 앞으로 연산 50만t으로 생산 능력을 확대할 계획이다. 그런데 이런 투자에는 기업 단위를 넘어 국가 산업안보와 국가 간 산업 협력 차원의 맥락이 결부돼 있음을 주지해야 한다. 지난 6월 열린 한·미 ‘공급망산업대화(SCCD)’에서 양국 산업장관은 인공지능(AI)의 부상으로 더욱 중요해진 반도체 등 첨단 산업 공급망에 대한 협력 확대를 주요 어젠다로 논의했다. 국가 간에 긴밀하게 진행되고 있는 핵심 광물 및 첨단 산업 공급망과 관련한 글로벌 차원의 탈(脫)중국 대응 움직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만에 하나라도 MBK가 고려아연의 경영권을 가져간다면 국가적·국제적 공급망에 혼란이 초래되지 않을지 걱정된다. 우선, 삼성전자의 평택·화성·기흥 공장, 그리고 SK하이닉스의 이천·청주 공장과 중국 우시(無錫) 공장의 반도체 생산 라인부터 차질이 발생할 수 있다. AI를 비롯한 다양한 첨단 산업에서 중국과 경쟁하는 미국 정보기술(IT) 기업들에도 연쇄 타격이 있을 수 있다.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가 반도체 황산의 주공급처인 고려아연 현 경영진의 기술력과 투자 의지에 신뢰를 보내며, 장기적 관점의 파트너십 관계를 바라는 것이 당연하다.
세계적인 석학 라피 아밋 교수가 경고한 것처럼 MBK가 고려아연을 지배할 경우 3∼5년 이내에 매각할 가능성이 크고, 특히 MBK의 자금에 중국 대형 국부펀드가 포함돼 있다는 사실은 국가안보에까지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최근 국부펀드들이 사모펀드를 활용해 타국의 핵심 기술을 확보하는 일종의 산업전쟁을 벌이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고려아연의 제련소가 있는 울산에서는 1인 1주식 갖기 운동 등 지역경제와 사회에 크게 기여하는 고려아연 지키기 운동이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고려아연 분쟁은 울산만의 일도, 한국의 위기만도 아니다. 아밋 교수의 조언처럼 고려아연은 한국에 중요한 전략적 기반산업이며, 미국·호주와 기타 지역 이해관계자들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중대한 이슈다. 정부 당국이 개입해 이 사안의 글로벌 차원의 맥락과 영향을 시급히 평가하고 국익 차원의 득실을 따져야 하는 이유다.
한 달이 지난 지금 다시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의 본질이 무엇인지 돌이켜봐야 한다. 우리가 무엇을 잃을 수 있고, 그래서 무엇을 반드시 지켜야 하는지 상기해야 한다. 확실한 것은 만약 고려아연의 세계 1등 기술을 잃게 되면 이 상황은 정부 간 협상으로든, 법적 조치로든 결코 돌이킬 수 없는 불가역적 결론으로 마무리된다는 점이다. 국가 산업의 위태로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슬기로운 대처가 절실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