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철환의 음악동네 - 한강 ‘햇빛이면 돼’

오전 10시 무렵의 서재는 음악실을 겸한다. 익숙한 멜로디에 하루를 의탁하면 이렇게 편안해도 괜찮은지 은근히 조바심이 난다. 저지방 우유를 마시며 노래와 동행한다. ‘예쁜 아내와 아담한 집과 새로 산 신발 창틀을 긁는 아침햇살 모르는 채 잠들어있는 내 아이의 포근한 이불’ 여기까진 무난하고 무던하다. 일상을 차분하게 나열하던 가수가 나른함을 내팽개치고 맥락에 어긋난 말을 내뱉는다. ‘나의 형은 젖이 모자라 죽었네’

귀를 간지럽히던 가사가 뇌를 어지럽히며 심장까지 진격한다. 우유를 입에 대기 미안할 지경이다. 생각이 꼬리를 문다. 소가 태어나지 않았다면 우유는 없을 테지. 농부가 젖을 안 짰다면 우유는 송아지 식량에 머물렀을 테지. 공장에서 위생적으로 관리 안 했다면 나는 우유를 안 마실 거야. 우유 살 돈조차 없다면 내게 우유는 신 포도에 불과할 텐데. 그나저나 채식주의자는 우유도 안 마실까. 좌충우돌의 끝은 결국 시간이 좌우로 정렬시킨다. ‘이 형도 아픔이 있었네’ 우유에 관한 명상으로 나를 움찔하게 만든 가객은 산울림의 김창완이다. 형은 노래를 이렇게 끝냈다. ‘그렇게 불안하게 나는 나의 행복을 본다’ 제목마저 그래서 ‘불안한 행복’이다.

김창완의 행보는 종횡무진이다. 드라마에 나와도 음악제에 나와도 진행자석에 앉아도 낯설지 않다. 그러다가 TV 속에서 소설가 한강을 만난 거다. 덕담으로 채워도 무난했을 텐데 이런 말을 던졌다. “아무리 소설가라도 그렇지 어떻게 그런 상상을 할 수가 있어요.” 솔직한 건가 무례한 건가. “그러니까 소설가죠.” 이런 답이 나옴 직한데 한강은 웃음으로 모면(?)한다. “괴롭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그리고 8년이 지났다.

‘우리가 얼마나 멀리 떨어져, 떨어져(두 번이나 반복) 있는가를 알기 위하여 신문을 보아야 한다’(산울림 ‘불안한 행복’) 오늘 신문은 온통 한 작가의 과거와 현재에 주목한다. 어디서 태어났고 어디서 자랐으며 어디를 다녔는가. 한강이 강인 줄만 알던 사람조차 그의 책을 구하러 책방에 들른다. 정시에 퇴근하던 인쇄소 직원들은 주말을 반납하고 평소에 후줄근하던 평론가들은 매무시를 가다듬고 TV에 출연한다.

세상과 얼마나 떨어져 있는가를 실감하기 위해선 산책도 요긴하다. (어떤 책이 좋으냐 물을 때 장난삼아 산책을 추천한 적도 있다) 산책로(통의동)에 있는 그 책방 이름은 오늘이다. 어제도 오늘이었고 아마 내일도 오늘일 것이다. 하루 사이에 뭐가 달라졌을까. 사람들이 몰려들고 작가는 숨는다. 스스로 한강의 일부가 되려는 건지 한강을 자신의 일부로 만들려는 건지 줄지어 사진을 찍는다. ‘나는 소장한다, 고로 나는 성장한다.’ 마치 이런 신념을 가진 듯하다.

문학동네 원주민이 음반까지 낸 싱어송라이터였다는 사실도 뜻밖이다. 어제까지 ‘안녕이라고 말하지 마’(원곡 가수 이승철)만 노래인 줄 알던 사람들은 오늘부터 한강의 ‘안녕이라 말했다 해도’를 부르기 시작했다. 한강이 언급한 기존가요도 꿈틀댄다. 악뮤(AKMU)의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는 역주행을 가동했다. 지혜를 담은 노래는 작가도 택시 안에서 울게 만든다. ‘바다처럼 깊은 사랑이 다 마를 때까지 기다리는 게 이별’이란 걸 알기에 ‘일부러 몇 발자국 물러나 내가 없이 혼자 걷는 널 바라본다’

한강이 노래로 전한 꿈은 담백하고 소탈하다. ‘나의 꿈은 단순하지 너와 함께 햇빛을 받으며 걷는 거지’(한강 ‘햇빛이면 돼’) 상 받은 자 옆에 상처받은 자가 있는 걸 아는 듯하다. 오늘따라 노래가 걸음을 재촉한다. ‘햇빛 우리에게는 그거면 충분해 한나절 따스한 햇빛이면 돼’

작가·프로듀서·노래채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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