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명품백 수수 불기소 이어 도이치 주가조작 의혹도 무혐의 수사 지연으로 총선 참패 불러
권력 겨냥한 과거 검찰과 달라 야당 검찰개혁에 명분만 제공 엄정한 수사로 신뢰 회복 절실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 리스크가 정국의 블랙홀이 됐다. 명태균 씨 폭로전으로 상황은 더 나빠졌다. 10·16 재보궐선거 전후로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김 여사의 대외 활동 자제와 ‘김 여사 라인’ 정리 등을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김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연루 의혹에 대해서는 검찰에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결과를 내놓아야 한다”며 사실상 기소 의견을 피력했다. 법리와 증거만 내세운 검찰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지난 2일 명품 가방 수수 의혹에 대해 윤 대통령의 직무와 관련성이 없고, 공직자 배우자 처벌 조항도 없다며 무혐의 처분했다. 검찰은 비공개 브리핑에서 “법률가적 양심에 따른 결정”이라고 했다. 하지만 가방을 건넨 최재영 목사를 기소해야 한다는 검찰 수사심의위원회 권고도 무시하며 ‘준 사람도 받은 사람도 처벌할 수 없다’는 안 좋은 선례를 만들었다.
재보선 다음 날인 17일엔 4년 6개월 만에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도 불기소 처분했다. 시세 조종에 김 여사의 계좌가 이용된 것은 맞지만 김 여사가 주범들과 공모하거나 범행 사실을 사전에 인식했다고 볼 증거가 없다는 게 무혐의 논리였다. 야당은 즉각 ‘면죄부 수사’라고 비판했다.
그동안 검찰 행보를 복기해보면, 곳곳에서 실기와 주저함이 엿보였다. 지난해 11월 명품 가방 수수 의혹이 불거진 뒤 검찰 고발됐을 때 신속한 수사에 나섰다면 어땠을까. 그런데 이원석 당시 검찰총장은 ‘용산’을 의식했는지, 아니면 4·10 총선에 미칠 영향을 우려했는지 움직이지 않았다. 한동훈 당시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이 문제에 대해 ‘국민 눈높이’를 내세우며 대통령과 충돌할 때도 검찰은 조용했다. 김 여사 대면조사 여부를 놓고 용산과 갈등이 있었다지만, 결국 총선 전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여당의 총선 참패 이유는 복합적이지만 공정 이슈에 민감한 핵심 투표층 30·40대의 이반이 컸다. 이들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한 전방위적 수사와 달리 김 여사 앞에서 작아지는 검찰을 보며 민주당이 씌운 ‘권력의 하수인’ 프레임에 동조했다. 검찰 조직이 살아 있는 권력 눈치 보기를 한다고 인식했다. 총선이 지나 5월 초 전담수사팀이 꾸려지고, 대면조사와 수심위 절차 등을 거쳤지만, 결론은 무혐의였다.
이번 정권의 검찰 행태는 역대 정권과 대비된다. 인사권을 쥔 권력에 약한 것은 검찰 조직의 태생적 한계이긴 하다. 그렇지만 수사권과 기소권을 쥔 검찰은 권력 앞에 순한 양이지만은 않았다. 공정한 외양을 위해 수사에서 최소한의 여야 균형을 맞췄다. 정권의 힘이 약해지면 권력에 대항하는 일도 적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저축은행 비리에 연루된 대통령의 형을 겨눴다. 2015년 박근혜 정부 시절엔 여권 인사들의 불법 정치자금 수수 의혹 사건인 ‘성완종 리스트’ 수사가 있었다. 전임 문재인 정부 검찰도 정권 초엔 ‘적폐 척결’에 봉사했지만, 중반 이후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입시비리 사건 등 권력 심장부에 칼을 들이댔다. 이는 윤 정권 탄생의 모태가 됐다. 그런데 윤 정부 검찰에선 기계적인 여야 균형도, 권력에 대한 엄정한 수사도 사라졌다. 만약 김 여사 특검법이 통과돼 ‘부실’ 수사가 드러난다면 검찰은 큰 곤란에 직면할 것이다.
이재명 대표는 재보선 유세에서 “징치(懲治·징계해 다스림)해도 안 되면 끌어내려야 한다”고 했다. 이에 호응한 민주당 친명계 모임은 18일 “정치검찰과 권력기관을 동원해 오직 정권 유지에만 골몰하는 검찰 독재정권의 지배하에 대한민국을 그대로 놓아둘 수 없다”며 ‘윤 정권 퇴진론’을 공식화했다. 오는 11월 1심 선고를 앞둔 이 대표 사법 리스크 방탄에 여념이 없는 민주당이 검찰 무혐의 처분을 빌미로 탄핵 국면을 조성하겠다는 위협에 나선 것이다. 세 번째 김 여사 특검법을 발의한 민주당은 심우정 검찰총장과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 탄핵도 추진하기로 했다. 동시에 검찰의 수사권을 박탈하고 기소만 전담하는 ‘공소청’으로 만드는 검수완박 종결판을 검찰개혁을 명분으로 밀어붙일 태세다. 검찰이 여론 설득엔 실패했지만 ‘검찰 폐지’ 추진은 과하다. 야권의 파상 공세 속에 검찰이 정치 중립과 수사 독립을 지키면서 생존할 수 있을까. 이제 검찰 스스로 답을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