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레드 노벨은 유언을 통해 유산의 이자를 다섯 등분해 물리학, 화학, 생리학 또는 의학, 문학, 평화 분야에서 가장 뛰어난 성과를 내거나 헌신한 사람에게 줄 것을 당부했다. 사진은 카롤린스카 의학연구소에 세워진 노벨의 흉상.  연합뉴스
알프레드 노벨은 유언을 통해 유산의 이자를 다섯 등분해 물리학, 화학, 생리학 또는 의학, 문학, 평화 분야에서 가장 뛰어난 성과를 내거나 헌신한 사람에게 줄 것을 당부했다. 사진은 카롤린스카 의학연구소에 세워진 노벨의 흉상. 연합뉴스


■ 10문10답 - 세계 최고 권위 노벨상

“인류에 가장 큰 공헌한 이에게”
1901년 노벨 유언 따라 제정

재단, 주식·채권·부동산 투자
현재 자산은 종잣돈의 3 ~ 4배

12월10일 스웨덴 시상식 복장
男 연미복·女 이브닝 드레스

첫2관왕 佛물리학자 마리 퀴리
문학상·평화상 거부한 인사도


한강 작가의 수상과 함께 노벨상을 향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뜨겁다. 국내에서는 평화상을 받은 고 김대중 전 대통령에 이어 두 번째이자 노벨문학상은 역대 최초다. 한강 작가의 책은 엿새 만에 100만 부가 팔렸고 서점가에는 유례없는 호황이 찾아오는 등 말 그대로 열풍이다. 1901년 제정된 노벨상은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만큼 다양한 이야기가 숨어 있다. 화제의 수상자부터 거부 사례, 초상 화가와 상금 등의 이야기를 두루 모았다.

카롤린스카 의학연구소. 연합뉴스 뉴시스
카롤린스카 의학연구소. 연합뉴스 뉴시스


1. 노벨상 기원과 주요 수상자는?

노벨상은 다이너마이트를 개발한 스웨덴의 과학자 알프레드 노벨(1833∼1896)이 각 분야에서 “인류에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에게 수여하라”는 유언에 따라 1901년 제정된 상이다. 당초 물리학·화학·생리의학·문학·평화 5개 부문으로 시작했고, 1968년 경제학상을 창설해 현재는 6개 부문에서 시상한다. 노벨상은 세계적인 연구자·작가들을 수상자로 선정하면서 권위를 더했다. 그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인물로는 1921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을 꼽을 수 있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가운데에도 우리에게 친숙한 이름이 다수 있다. 헤르만 헤세(1946)와 어니스트 헤밍웨이(1954), 알베르 카뮈(1957) 등이 대표적이다.



2. 노벨상 시상식 어떻게 치러지나

노벨상 수상 후 한동안 침묵하다가 포니정 혁신상 시상식 자리에서 소감을 밝힌 한강 작가가 다시 한번 공식 석상에 모습을 보이는 것은 오는 12월 10일 스웨덴에서다. 노벨상 시상식은 매년 노벨의 기일인 12월 10일 스웨덴 스톡홀름의 콘서트홀에서 열린다. 이날 총 1800석 규모의 콘서트홀엔 푸른색 카펫이 깔리고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수여되는 노벨평화상을 제외한 5개 부문의 수상자들이 한자리에 모인다. 상금과 함께 메달, 상장은 스웨덴 국왕 칼 구스타브 16세가 시상한다. 복장 규정이 있다. 남성은 연미복, 여성은 이브닝드레스를 착용해야 한다. 다만 한복과 같은 각 나라의 전통 의상을 입는 것은 허용된다. 수상자들은 수락 연설도 하는데 그동안 노벨문학상 수상자들의 연설은 화제가 됐다. 한강 작가가 어떤 소감을 내놓을지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3 한국 수상자가 3명?

한국에서 현재까지 수상자는 김 전 대통령(2000년 평화상)과 한강 작가(2024년 문학상) 2명이지만, 노벨위원회의 홈페이지에 따르면 한국 출신 수상자는 총 3명이다. 그것도 김 전 대통령보다 13년 전에 한국 출신의 수상자가 이름을 올려놓고 있다. 그 주인공은 1987년 노벨화학상을 받은 찰스 J 피더슨. 이는 “후보자 국적을 고려하지 말고 상을 주라”는 노벨의 유지에 따라 노벨위원회에서 해당 수상자의 국적이 아닌 출생지를 바탕으로 분류해 일어난 일이다. 노벨위원회는 홈페이지에 수상자 국적이 아닌 출생지와 소속기관, 수상 이유 등을 밝히고 있다. 피더슨은 1904년 10월 부산에서 태어나 8세 때까지 한국에 살다 일본으로 건너갔고, 미국 대학에 진학했다.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석사 학위를 딴 뒤 미국 듀폰사에서 근무하던 중 유기화합물 ‘크라운 에테르’를 발견한 공로로 노벨화학상을 받았다.

스웨덴 왕립과학원. 연합뉴스 뉴시스
스웨덴 왕립과학원. 연합뉴스 뉴시스


4. 노벨상을 거부한 사람들?

충격적이게도 인류 지성의 정점에 선 이들에게 주어지는 노벨상의 영예를 거부한 이들도 있다. 노벨상 수상을 거부한 최초의 인물은 1964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철학자이자 소설가인 장 폴 사르트르다. 그는 “노벨상이 너무 서양에 치우쳐 있고 동양은 별로 받지 못했다. 또한 노벨상을 받으면 나의 행동과 지지 발언이 노벨상의 권위로 대체돼 버리기 때문”이라며 수상 거부의 이유를 밝혔다. 1973년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레득토 북베트남 외교부장도 수상을 거부했다. 베트남 전쟁의 종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헨리 키신저 당시 미국 국무장관과 평화상 수상자로 공동 선정됐으나 ‘아직 조국에는 평화가 찾아오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어 거부했다. 당사자가 수상을 거부하긴 했으나 역대 선정자 명단에는 공식적으로 기록돼 있다.

5. 노벨상을 2회 받은 사람은

생전에 단 한 번 받기도 어려운 노벨상을 두 번이나 수상해 ‘2관왕’을 기록한 사람도 존재한다. 미국의 과학자 라이너스 폴링은 화학상과 평화상을 석권해 세계에서 유일하게 과학상과 평화상을 함께 수상한 인물이자 노벨상 ‘2관왕’ 중 유일한 단독 수상자로 기록돼 있다. 폴링은 화학결합에 대한 연구로 1954년 화학상을 받았으며 제2차 세계대전이 원자폭탄 투하로 끝나자 반핵 운동에 매진했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1962년 평화상을 수상했다. 최초의 2관왕은 폴란드 태생의 프랑스 물리학자 마리 퀴리. 1903년 방사성 현상을 설명한 업적으로 남편 피에르와 함께 물리학상을 받았고, 방사성 원소인 라듐과 폴로늄을 분리해 화합물을 연구한 업적으로 1911년 화학상을 단독 수상했다. 그를 포함해 노벨상을 두 번 받은 이는 총 5명이고 모두 과학자다.

노르웨이 노벨위원회. 연합뉴스 뉴시스
노르웨이 노벨위원회. 연합뉴스 뉴시스


6. 부문마다 선정 기관이 다르다

노벨상은 부문별로 선정 기관이 다르다. 생리의학상은 스웨덴 카롤린스카 의학연구소, 물리·화학·경제학상은 스웨덴 왕립과학원, 평화상은 노르웨이 노벨위원회에서 선정한다. 소설가 한강이 받게 된 문학상의 선정 주체는 스웨덴 한림원(翰林院)으로 1786년 당시 국왕 구스타브 3세가 설립한 스웨덴어·스웨덴 문학 진흥 기관이다. 영어로 스웨디시 아카데미(Swedish Academy)로 번역되는 이 기관의 한국어 명칭이 한림원이 된 기원은 명확하지 않지만 중국에서 유래됐다는 추측이 유력하다. 당나라 현종 때 설치한 왕립학술기관을 한림원이라 부른 것이 용어의 시초로 붓(翰)을 든 학자들이 숲에 모여 고담준론(高談峻論)을 나눈다는 의미에서 유래했다. 이 영향으로 학술 기관을 한림원으로 부르는 관행이 주변 동아시아 국가로 퍼졌다는 것이다. 실제로 통일신라와 고려 시대에도 임금의 명령을 받아 문서를 꾸미는 기관을 각각 한림대(臺)·한림원으로 불렀다.

7. 평화상은 왜 노르웨이 오슬로일까

노벨상 시상식은 12월 10일 스웨덴 스톡홀름의 최대 번화가인 세르겔 광장 북쪽에 위치한 ‘스톡홀름 콘서트홀’에서 열린다. 그런데 예외적으로 평화상 시상식만이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진행된다. 노벨상 가운데 평화상만 선정 주체와 시상식을 노르웨이에서 맡는 것은 노벨의 유지에 따른 것이다. 노벨은 유언장을 통해 노벨상의 시상 부문과 수여기관을 지목했는데, 평화상의 심사와 시상은 노르웨이 의회에 일임했다. 정확한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세 가지 정도의 추측이 존재한다. 첫째는 노벨이 유언을 작성하던 당시 자치권은 가진 채 독립국이 되지 못한 노르웨이와 노르웨이를 합병 중이었던 스웨덴이 동등한 연합국가가 되길 바랐다는 것이다. 둘째로 당시 노르웨이가 국제분쟁의 중재와 협상에 능했다는 점. 마지막으로 노벨이 당시 평화운동가였던 노르웨이의 작가 뵈른스트예르네 뵈른손을 워낙 좋아했던 것이 영향을 줬을 것으로 꼽힌다.

8. 가장 먼저 알게 되는 사람이 화가?

해마다 10월 노벨상 소식은 그 수상자의 초상화와 함께 전해진다. 얼굴의 검은색 윤곽선 위로 황금빛 음영이 드리워 있다. 공들여 이 초상화를 그리는 화가는 수상자 이름을 미리 알 수 있는 극소수 인물 중 하나로 꼽힌다. 스웨덴 출신의 화가 니클라스 엘메헤드는 지난 2012년부터 노벨상 수상자의 초상화를 그려 왔다. 소설가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에 따라 한국에서도 초상화를 그린 그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노벨재단 산하의 ‘노벨미디어’에서 일하며 노벨상 관련 시각 콘텐츠를 맡고 있다. 엘메헤드는 “일부 과학 분야의 수상자들은 홈페이지에 올릴 만한 사진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에 초상화를 그리기 시작했다”며 “초상화는 언론 보도처럼 강렬하고 독특한 시각적 인상을 준다”고 밝혔다. 그는 수상자 이름을 접하는 시점은 밝힐 수 없다면서도 “초상화는 몇 시간 안에 완성할 수 있다”고 전했다.

스웨덴 한림원의 노벨상 각 분야 수상자 발표 순간.  연합뉴스 뉴시스
스웨덴 한림원의 노벨상 각 분야 수상자 발표 순간. 연합뉴스 뉴시스


9. 상금 규모와 노벨상 메달은?

노벨이 1895년 노벨상을 위해 남긴 종잣돈은 현재 가치 2400억 원가량으로 환산된다. 투자·이자 수익 등을 통해 불린 노벨재단의 현재 자산 규모는 종잣돈 대비 3∼4배에 달한다. 해마다 생리의학·물리학·화학·문학·평화·경제 등 6개 분야 상금은 이 재단의 전년도 이자 수익 중 67.5%를 떼고 나오는 돈. 수익률이 매년 다른 탓에, 1919년 1차 대전 당시의 상금은 노벨상 시상식의 첫해 대비 25% 수준으로 떨어졌는가 하면 1990년대의 호황기에는 같은 시점 기준 150%까지 늘기도 했다. 노벨상 메달은 18K 금에 24K 도금으로 원가는 1만 달러(1300만 원)다. 상금은 1100만 크로나로 책정돼 있다. 한강은 납세 없이 전액을 갖는다. 한국 소득세법 시행령에 따르면 ‘노벨상 또는 외국 단체·기금에서 받는 상의 상금과 부상’은 비과세로 분류된다. 이는 건강보험료 산정 기준액에서도 제외한다.

10. 깜짝 수상과 끝내 못 받은 사람들

노벨상을 받을 것으로 매년 거명됐지만 끝끝내 받지 못한 이가 있는 반면, 본인도 기대하지 않다가 수상하는 경우도 있다. 2017년 대중가수로서 처음 노벨문학상을 받은 밥 딜런의 수상 소감은 “상상도 못 할 영광”이었다. 발표 직후 한동안 침묵했던 그는 ‘개인 사정’을 이유로 시상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반면 지난해 세상을 떠난 소설가 밀란 쿤데라는 생전에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군 중 상단을 차지했지만 수상은 불발됐다. 쿤데라뿐 아니라 미국 현대문학 거장으로 꼽히는 필립 로스 등은 유명 문학상들을 휩쓸었지만 노벨문학상과는 연이 닿지 않았다.

신재우·장상민·서종민 기자
신재우
장상민
서종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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