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조사의 공신력과 예측력을 둘러싼 논란은 선거 과정의 단골 메뉴다. 지난 2016년 미국 대선에서 다수의 전문 기관이 내놓은 전망과 달리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승리한 사건은 여론조사 예측 실패의 상징적 사례로 지금도 거론된다. 또, 선거 조사 방법론의 한계와 신뢰성에 대한 논의는 이후에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특히, 최근 미국이나 한국처럼 정치 양극화가 심한 환경에서는 정치 여론조사가 자칫 도구화하거나 정치적 수단으로 변질·악용될 수 있다.
최근 명태균 씨가 지난 대선 국민의힘 경선 당시 윤석열 후보에게 유리하도록 여론을 조작했다는 의혹이 정치권에서 제기되면서 부실 여론조사 방지 대책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일각에서는 공직선거법이나 정치자금법을 위반한 조사기관을 시장에서 영구 퇴출시키는 법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부실 여론조사 기관에 대한 정치권 일각의 규제 목소리는 10·16 재보선에서 일부 조사기관의 결과 예측치가 실제 결과와 비교해 크게 엇나가면서 불씨가 더 커지는 모양새다.
물론, 편파적이고 왜곡된 정보를 뿌리는 부실 조사기관을 규제할 명분은 차고 넘친다. 여론 조작과 허위 정보를 사전에 차단해 조사의 객관성과 공정성을 담보하고 유권자의 정치 정보 환경 개선에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론조사 규제는 자칫 유권자 정보 선택권뿐만 아니라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으며, 어느 주체가 공정하고 객관적인 조사 기관인지를 평가할 것인가 하는 더 어려운 숙제를 남긴다는 점에서 결코 쉽게 받아들일 수단은 아니다.
따라서 선거 여론조사에 대한 효율적 관리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면 그것은 정부 주도의 규제보다는 자율 규제 중심이어야 하며, 조사 기관에 대한 사전적 통제보다는 부실 조사 기관에 대한 사후 책임을 묻는 방식이어야 한다.
우선, 부실 여론조사를 방지하고 결과의 공신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표본의 대표성, 표본 추출 과정의 객관성과 과학성, 그리고 투명성 기준을 강화해야 한다. 가능하다면 여론조사 기관들이 독립적 협의체를 구성해 자체적으로 조사의 품질을 앞서 제시한 기준에 근거해 평가하도록 하고, 그 평가 결과를 대중에 공개해 사용자의 참고 자료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한, 조사 결과의 투명성 제고를 위해 미공표 목적 조사 또한 여심위 등록이 필요하게 해야 한다. 이번 국민의힘 경선 조작 의혹에서 보듯이 조사 결과의 외부 공개 여부와 상관없이 선거 과정에서 해당 자료는 전략적으로 악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지난해 여심위는 선거 여론조사 기관 등록유지 요건을 더 강화했다. 하지만 정치 여론조사가 갖는 사회적 영향력에 비해 그 등록 조건이 여전히 허술하다는 비판이 있는 만큼 추가 자격 요건 강화가 필요하다. 그리고 여론 조작 및 불순한 목적의 허위 여론 정보 유포에 대한 처벌 규정을 강화해 부실 조사기관이 시장에서 반복적으로 여론을 왜곡·교란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여론조사는 유권자에게 중요한 정보원이 되기도 하지만, 왜곡된 여론조사의 홍수는 민심의 눈을 흐려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양날의 검이 될 수도 있다. 이는 유권자의 판단을 흐리게 하고, 선거의 공정성을 훼손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