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함 前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21일 오후 차담(茶談) 형식의 회담을 별 성과 없이 끝냄으로써 향후 정국에 심상치 않은 파장을 예고한다. 윤·한 갈등은 지난 1월 김건희 여사 명품 가방 수수 논란으로부터 시작해 수차례 갈등과 봉합을 거듭했다. 이번 윤·한 80분 빈손 회동으로 보수의 분열이 첨예화돼 실제로 공멸의 ‘루비콘 강을 건너기’에 이른 게 아닌가 한다.

사실 이번 ‘면담’은 처음부터 전혀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정치적 게임으로 이뤄진 회담이었다. 우선, 대통령실은 회동을 원하지 않았을 만큼 한 대표를 경외시했다. 특히, 한 대표가 대통령의 의중과 달리 당 대표에 출마해 63%의 지지로 당선되면서 당직 인선과 오찬·만찬 참석 및 독대 여부 등에 만만찮은 신경전을 벌였다. ‘김대남 녹취록’ 사건과 ‘명태균 공천 개입’ 사건이 불거진 이후 대통령실은 궁지에 몰렸다.

게다가 한 대표의 ‘독대’ 요구는 당돌했다. 일반적인 독대 요청과는 달리 언론을 통해 공개적으로 거침없이 했고, 주제도 일방적으로 제시했다. 3대 요구 사안으로 △대통령실 인적 쇄신 △대외 활동 중단 △의혹 규명 협조를 제시했다. 이 3대 사안은 모두 김 여사의 행적과 관련된 것으로, ‘한남동 라인’ 제거와 ‘정상배’에 불과한 이들의 의혹을 규명하자는 것이다. 이것이 윤 대통령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고, 대통령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여겨졌다.

물론 지난 10·16 재보궐선거에서 여론을 현장에서 목격한 한 대표가 이번 회동에서 악화한 민심과 여론을 전환하기 위해 ‘과감한 변화와 쇄신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은 당연했다. 한국갤럽 조사에 따르면, 김여사특검법에 대해 63%가, 공개활동 제한에 대해서는 67%가 각각 찬성했고, 대통령 직무 수행이 잘못된 이유 가운데 김 여사 문제가 두 번째로 높았다. 대통령이 읍참마속(泣斬馬謖)의 심정으로 김 여사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낮은 20%대의 지지율에서 더 떨어질 수도 있다.

한 대표에게도 자숙할 여지는 많다. 독대 요구가 한 달 만에 이뤄졌는데, 왜 성과가 없는지 성찰할 필요가 있다. 본래 독대란 정상적인 소통 방법이 아니므로 신중하고 사려 깊게 진행해야 한다. 여론몰이식으로 끌고 간다면, 기꺼이 수락할 최고 권력자는 없을 것이다. 사전 조율이 절대 필요하다. 사안에 대한 협의가 어느 정도 있어야 회동에서 결실을 볼 수 있다. 또, 회동을 불과 몇 시간 남기지 않고 야당 대표와의 회담을 전격 수락하는 행태는 신중하지 못했다. 회동에서 상의하고 수락했더라면 어땠을까.

윤 정부의 최대 문제는 소통이다. 대통령의 목소리가 크다는 소문은 익히 알려졌고, 내조만 하겠다는 영부인의 오지랖은 한계를 모른다. 정부·여당 지도부 간의 원활한 소통도 결여돼 있다. 특히, 지도자 간의 소통이 결렬되면 균열이 일어나고 정치적 효율성과 정통성을 훼손하기 마련이다. 정권의 연착륙을 위해 대통령의 전향적인 조치와 수평적 당·정 관계 확립이 절실하다.

아무리 국민과 민생을 위해 자유민주주의를 외치더라도 소통이 없으면 감정이입이 되지 않는다. ‘왕’자에 익숙해 군림하던 리더십 시대는 지났다. 국민은 관용과 아량에 기반을 둔 섬김의 리더십, 소통의 리더십을 선호한다.

양승함 前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양승함 前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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