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숙 논설위원

전쟁은 아군과 적군 간의 대량 살육을 피할 수 없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비인간적이지만, 전쟁터에서 쓰이는 ‘대포밥’이나 ‘총알받이’란 표현은 그중에서도 최악이다. 병사를 탄알과 같은 소모품으로 비하하기 때문이다. 6·25전쟁 때 북한 공산군은 국군을 향해 ‘미제 놈의 대포밥이 되어 죽을 것’이라고 악담을 퍼부었고, 미군 병사들은 중국군을 대포밥이라고 불렀다. 변변한 복장도 갖추지 않은 의용군이란 이름의 병사들이 인해전술의 도구처럼 쓰인 탓이다.

6·25전쟁 때의 중국군 포로 이야기를 담은 하진의 소설 ‘전쟁 쓰레기(War Trash)’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나온다. ‘우리는 중국 국경 안으로 불길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이곳에 와 있는 것이었다. 혹은 우리는 대부분의 전쟁 포로들이 믿는 것처럼 러시아인들을 위해 대포밥 노릇을 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것은 맞는 말이었다.’ 중국군은 미군이 6·25전쟁을 만주 등지로 확전시키는 것을 막기 위해 한반도에 왔다고 생각하지만, 포로로 잡힌 후엔 김일성의 6·25 남침을 승인한 소련을 대신해 싸운 것이라는 냉엄한 현실을 자각하게 된다는 얘기다. 6·25전쟁의 어두운 유산인 대포밥 표현이 재등장했다. 북한이 러시아에 파병을 하자 미 랜드연구소의 브루스 베넷 선임연구원은 ‘내셔널 인터레스트’ 기고문에서 ‘러시아가 북한 병사들을 대포밥(cannon fodder)으로 여길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이일우 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도 “북한군은 러시아 부대의 대포밥 정도의 가치밖에 없다”면서 “북한군이 무더기로 희생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022년 2월 24일 우크라이나 침공을 ‘특별군사작전’이라고 했고, 국내 여론을 고려해 군 동원령도 내리지 않았다. 부족한 병사는 용병 회사인 바그너그룹을 통해 메꿨다. 이 과정에서 5만여 명의 죄수가 6개월 참전 후 사면 조건으로 투입, 대포밥으로 내몰렸다. 그러나 그마저도 바닥이 나자 북한 김정은에게 손을 벌린 것이다. 우크라이나 침공 후 러시아군 사상자는 60만 명으로 추산되고 요즘에도 부상·전사자는 하루 평균 1000명이 넘는다. 70년 전 낯선 땅에서 대포밥이 됐던 중국군처럼 북한군도 생면부지의 땅에서 총알받이가 될 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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