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시그강 인근 3.4㎞ 성벽 눈길
필리핀(마닐라)=글·사진 신재우 기자 shin2roo@munhwa.com
화려한 리조트들이 위치한 파사이 지역을 지나 파시그 강 인근으로 향하면 만나볼 수 있는 다소 이국적인 풍경이 있다. 바로 성벽으로 둘러싸인 구도시 ‘인트라무로스’. 유럽풍의 건축 양식과 돌로 쌓은 성벽을 보고 의아할 수도 있지만 여기엔 필리핀의 과거가 녹아있다.
필리핀 식민지 시대의 아픔은 이곳에 위치한 ‘산티아고 요새’에 고스란히 스며들어있다. 16∼19세기 필리핀은 스페인의 식민 지배를 받았고 1571년 스페인 제국은 이곳에 3.4㎞에 달하는 벽을 세워 성벽 도시를 세웠다. 그리고 이곳 산티아고 요새는 1593년 초대 필리핀 총독인 미겔 로페스 데 레가스피가 만든 이후로 필리핀의 기구한 역사와 함께했다. 필리핀은 1898년 독립 선언을 했지만 이후 스페인과 미국의 전쟁 과정에서 미국의 지배를 받았고 1943년 2차 세계 대전 당시에는 일본에 점령되기도 했다. 필리핀이 완전한 독립을 이룬 것은 1945년에 종전이 되고서다.
산티아고 요새는 그 과정에서 매번 용도가 달라졌다. 스페인의 군대 기지가 되기도 하고 미 육군 본부 또는 지하 감옥이 되기도 했다. 특히 일본 점령 당시에는 지하 감옥에 포로를 가두고 처형하는 장소로도 쓰일 정도로 쓰린 역사가 가득한 곳이다.
산티아고 요새로 들어가면 서 있는 동상은 바로 이 역사 속에서 영원히 남은 독립 영웅 ‘호세 리살’이다. 그는 필리핀이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려던 시기에 독립운동을 이끌었고 폭동을 주도했다는 혐의를 받고 1896년에 처형됐다. 그리고 산티아고 요새는 그가 사형 선고를 받기 전까지 수감됐던 곳이자 현재 그를 기리는 많은 필리핀인이 찾는 곳이다.
“여러분 나라에도 독립 영웅이 있나요?” 산티아고 요새를 안내해주던 가이드가 넌지시 던진 질문엔 그간 깨닫지 못했던 동질감이 엿보였다. 지금은 K-문화를 매개로 한국과 이어지는 필리핀이지만 우리의 역사 속에는 이런 숨은 연결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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