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한 장의 사진이 많은 것을 말해준다. 지난 21일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만난 사진을 보면 긴 사각 테이블 한 편에 대통령이 앉고 바로 맞은편에 한 대표와 정진석 대통령비서실장이 앉았다. 검찰 조사라면 모를까 타협을 끌어내기에 좋은 배치는 아니다. 협상을 유도하는 테이블은 원탁이다. 협상학의 기초다. 정면으로 부닥치는 일은 피하면서 뭔가 합의점을 찾자는 의도다. 참고로, 지난 4월 윤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회담 때는 두 사람이 원탁에 나란히 앉았다.
아니나 다를까, 어렵게 성사된 두 사람의 만남은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양측의 입장 차이만 재확인한 채 끝났다. 양쪽 모두 섭섭했을 것이다. 충분히 이해된다. 윤 대통령은 거듭 ‘역린’을 건드리는 한 대표에게 화가 났을 테고, 한 대표 또한 민심을 외면하는 듯 보이는 대통령이 답답했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두 사람이 나라를 걱정한다면 이대로 있어서는 안 된다. 국정의 최종 책임자로서 그리고 여당의 대표로서 두 사람은 2인 3각의 주자처럼 때로 엇박자가 나더라도 함께 뛰어가야 한다. 감히 상상하기조차 두려운 혹독한 겨울이 덮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국제적으로는 대만에 대한 중국의 압박이 날로 거세지고 있다. 지난 14일에는 대규모 대만 포위 군사훈련을 펼쳤다. 중국이 대만을 무력으로 침공하는 경우 그 과정에서 한반도도 위험해진다는 게 국제정치학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북한은 2개 국가론을 내걸고 대남 무력 공격을 위협하고 있다. 또한, 러시아와 군사동맹을 통해 우크라이나 전쟁에 파병하고 그 대가로 첨단 무기 기술을 얻어내려는 것으로 보인다.
원인이 어디에 있든 국내 경제도 심각한 상황이다. 대기업·중소기업·자영업 모두 어렵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주식시장이다. 한국 주식시장은 훨훨 날아가는 미국은 차치하고 심지어 전쟁 중인 러시아보다 실적이 나쁘다. 경기가 좋지 않지만, 불안한 부동산 시장 때문에 한국은행이 확장적 통화정책을 펴기도 어렵다. 과도한 상속세 부담과 금융투자소득세 불안 때문에 해외로 탈출하는 대자본가는 급증한다.
국내 정치 상황은 더욱 엄중하다. 야당들이 대통령 탄핵을 이야기하기 시작한 것은 이미 오래다. 지난 5일에도 이재명 대표는 “선거를 못 기다릴 정도로 심각하면 도중에 끌어내리는 게 민주주의”라며 탄핵을 시사하는 발언을 했다. 용산이 거부권 행사 의사를 밝힌 법안들을 거듭 통과시키는 것도 탄핵을 위한 ‘빌드업’의 일환이라는 분석이 있다.
11월로 예정된 이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재판의 1심 선고를 전후해 무언가 엄청난 ‘폭풍’이 몰아칠 가능성이 엿보인다. 야권이 뭔가 큰 걸 준비한다고 상정하면 그동안 생뚱맞아 보이던 퍼즐 조각들이 제자리를 찾는다. 뜬금없어 보이던 계엄령 준비 논란도 계엄이 요구될 만큼 심각한 사태에 ‘대비’해 계엄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공작일 수도 있겠다는 합리적 의심이 든다. 헌법재판소를 심리정족수 미달 상태로 방치하는 것도 만에 하나 탄핵안이 국회를 통과했을 때 직무 정지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든다. ‘왕좌의 게임’에서처럼 겨울이 오고 있다. 용산과 여당은 함께 단단히 준비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