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학교로 진학하려고 시골을 떠났을 때 시도 때도 없이 서럽고 눈물이 쏟아졌다. 내 오감에 새겨진 시골의 내와 강, 국기게양대에서 나부끼던 태극기, 들길과 초목들, 야트막한 둔덕, 꿩을 몰던 흰 눈 덮인 들 같은 것들이 삼삼했다. 내 안에 소용돌이치는 슬픔으로 꿈속에서도 울고, 혼자 찬밥을 떠먹으면서도 끄억끄억 울었다. 가슴 한 구석에 응어리진 결핍감이랄까, 상실감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도무지 알지 못했다. 1969년 중학교 2학년이던 나는 오영수 소설 전집을 읽으며 벅차오르는 감정에 울음을 터뜨렸다. 몸은 멀쩡했지만 어딘가 아픈 게 분명했다. 돌이켜보면, 나는 향수병에 시달리고 있었던 거다.
노스탤지어라는 생경한 외래어를 접한 건 열대여섯 살 때이다. 누군가의 시에서 발견한 단어다. 노스탤지어는 정서적 유대감을 발화하는 과거의 시공에서 떨어져 나오면서 다시 그것을 되찾고자 하는 마음에 바탕을 둔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내 최초의 질병은 노스탤지어라는 병이다. 나는 소년 시절에 그게 병인지도 모른 채 앓았다. 과거와의 유리에서 생긴 노스탤지어는 복잡하고 미묘한 슬픔과 매혹을 지닌 것, 질병과 정념 사이에 걸쳐진 달콤씁쓸한 감정이나 숭고한 질병이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슬픔과 얕은 잠, 그리고 무기력을 동반하는 노스탤지어의 징후는 다양하다. 고향과 유년기에 대한 애착과 그리움, 그 반사로써 낯선 현실로 밀려온 데서 느끼는 슬픔과 멜랑콜리, 잃어버린 시간을 향한 낭만적 회고 따위다.
장밋빛으로 채색된 과거의 영화를 향해 끓어오르는 갈망은 삶이 곤궁하고 팍팍할수록 커진다. 그건 감미로운 형벌이다. 영국의 감정사학자는 노스탤지어를 ‘전서구(傳書鳩)의 귀소성’처럼 우리 내면에 숨은 회귀 본능이라고 말한다. 그건 “한마디로 과거, 유년기, 잠, 무의식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생물학적이고 주기적인 경향성’에 대한 굴복”(애그니스 아널드포스터, ‘노스탤지어, 어느 위험한 감정의 연대기’, 193쪽)이라는 것이다. 노스탤지어는 슬픔과 자매 간이자 고통과는 사촌 간이다. 그것은 감정의 퇴행이 아니라 우리 내면에 새겨진 태고의 욕망에 가깝고, 현실의 괴로움으로부터 도피하려는 심리와 맞닿아 있다.
우리는 노스탤지어라는 감정에 기대어 정서적 안녕과 평화를 구한다. 이건 노스탤지어의 순기능이다. 그러나 병든 노스탤지어, 즉 고립과 소외에 처한 마음에서 자라는 유령들도 있다. 이 유령은 착한 가면을 쓴 채 과거를 미화하고 그 시대의 주역을 영웅화하며, 과거가 더 좋았다고 속삭인다. 어떤 이들은 노스탤지어를 제 이익을 위해 이용한다. 거짓말과 허풍을 일삼는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선동 문구에 미국인들이 동조하고, 러시아 사람들이 과거 소련 시절의 배급 경제 체제를 그리워하는 게 그 예다.
아울러 노스탤지어는 현실에 대한 불만의 반동으로 과거를 화사하게 꾸미고 부풀린 채로 유행으로 되살아나기도 한다. 과거의 노래와 춤과 복장, 그리고 음식 등이 우리의 공허한 마음을 파고들며 번성한다. 향수를 자극하는 보리밥집이 문전성시를 이루고, 앤틱 가구로 집안을 꾸미거나 빈티지 패션을 선호하는 것, 김광석 같은 옛 가수의 노래가 유행을 타고 돌아온다. 이런 현상은 ‘노스탤지어 산업’의 부흥이라고 할 만하다. 그 본질은 과거에 대한 동경이자 추억의 재활용이다.
노스탤지어는 과거와 현재를 잇는 끈이다. 과거의 현존 없이는 현재의 나도 없다. 우리는 과거에서 도망갈 수 없다. 자의든 타의든 실향인이 된 이들은 평생 추억 기억을 살찌우는 고향과 유년을 품은 채 살아간다.
꽤 오래전에 어머니를 모시고 고향을 들른 적이 있다. 세월로 인해 기억도 흐려진 데다 고향 마을이 너무 낯설게 바뀐 탓에 내가 나고 자랐던 터를 찾지 못한 채 마을을 서성거렸다. 나중에야 집터를 찾았는데, 집은 온데간데없고 그 자리엔 축사(畜舍)가 들어서 있었다. 옛 동무를 수소문했던 어머니는 아무도 만나지 못해 낙망했다. 그날의 참담함과 씁쓸함은 오래도록 남았다. 차라리 고향을 찾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 거였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어머니와 나는 입을 꾹 닫은 채 한마디도 나누지 않았다. 변해 버린 고향 모습에 실망하던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도 오래되었다.
노스탤지어에 빠지면 기분은 안정감을 잃고 들쭉날쭉 날뛴다. 나는 노스탤지어를 품은 채 생의 긴 터널을 건너왔다. 지구를 촘촘하게 잇는 디지털 네트워크의 확산으로 화상 통화를 하며 현재의 동시성을 누리게 되면서 노스탤지어의 위세도 누그러진다. 노스탤지어는 대상과의 거리에서 발생하는데, 그 조건이 사라진 덕분이다. 오늘날에는 노스탤지어가 일으킨 몽상으로 아파하는 사람이 드물어진 듯하다. 평생 고향을 떠나 타지를 떠돌았지만 이제 내 안의 고향을 향한 그리움이나 회한, 슬픔과 멜랑콜리는 말라붙은 듯하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노스탤지어라는 은하계에서 울고 웃으며 살다가 죽는다. 내가 노스탤지어로 감정이 휘둘리지 않게 된 건 고향이 나를 버린 탓이다. 어머니도 돌아가시고, 내 유년기의 추억 기억을 공유할 사람도 더는 없다. 두 번 다시 타향보다 더 낯설어진 고향을 찾을 일도 없을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