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서울 강남구에서 눈길을 끄는 자료를 냈다. 장기간 방치돼 ‘골칫덩어리’가 된 집회 현수막들을 철거하기 위해 전국 기초자치단체 최초로 조례를 개정하고, 한 달 동안 지하철 강남역과 선릉역 일대 현수막을 모두 정비했다는 내용이었다.
옥외광고물 등의 관리와 옥외광고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옥외광고물법)에 따르면, 관할 경찰서에 집회신고만 하면 따로 허가를 받지 않아도 현수막을 게시할 수 있다. 그런데 강남구에 따르면 이를 악용해 집회를 열지도 않으면서 현수막만 걸어놔 도시 경관을 해치고 도로 안전까지 위협하는 상황이 계속됐다. 이에 강남구는 관련 조례를 고쳐 실제로 집회나 행사가 열리는 기간에만 현수막을 설치할 수 있고, 이를 어기면 조치를 할 수 있게 했다. 이에 따라 강남역 1·2번 출구와 도로에만 17개나 난립해 있던 현수막을 일제히 정비할 수 있었다. 집회신고자들에게 자진 정비를 요청하고, 일주일 이상 주·야간 현장점검까지 했다. 그 결과, 4개는 집회신고자가 자진 철거했고 나머지는 구청과 경찰 공조로 철거했다. 선릉역 4번 출구 일대 현수막 16개도 철거했다.
강남구의 조치는 현수막 공해에 대처하는 모범 사례로 꼽을 만하다. 하지만 정당들이 시도 때도 없이 내거는 현수막에 대해서는 지방자치단체가 정리할 길이 없다. 조례를 근거로 정당·선거 현수막 정비에 나섰던 지자체들이 줄줄이 패소했기 때문이다. 최근 서울행정법원은 진보당이 서울 송파구청장과 서대문구청장을 상대로 제기한 현수막 철거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이들 구청은 진보당이 게시한 현수막이 특정인의 실명을 표시해 비방하거나 모욕하면 안 된다는 서울시 조례에 어긋난다고 봤다. 그러나 법원은 조례 규정이 상위법인 옥외광고물법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진보당의 손을 들어줬다. 7월 말에는 정당 현수막 개수를 제한하고 전용 게시대에만 걸도록 한 지자체 조례들이 대법원에서 몽땅 무효화됐다. 울산시의회는 지난해 9월 공포한 ‘울산시 옥외광고물 등의 관리와 옥외광고 산업 진흥에 관한 조례’를 통해 ‘정치 현수막을 전용 게시대에 설치하고, 이를 위반하면 철거할 수 있다’는 규정을 신설한 바 있다. 하지만 옥외광고물법과 충돌한다는 지적이 있었고, 행정안전부는 비슷한 조례를 만든 인천·광주·부산시의회까지 총 4곳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대법원은 ‘정당 현수막에 대한 규율을 통해 정당 활동의 자유를 제한할 필요성이 있더라도 입법자가 스스로 형식적 법률로 규정해야 할 사항’이라고 밝혔다. 표현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한 판단이지만, 국회가 정당 현수막을 강하게 규제할 리 없다는 게 문제다.
지난 16일 재·보궐선거가 끝났다. 선거 규모가 크든 작든, 선거가 치러질 때마다 확실하게 남는 것은 정당이나 후보자들이 걸었던 현수막 폐기물이다. 앞서 지난 4월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폐현수막 발생량이 2574t에 달했다고 한다. 모바일의 시대, 거리에 내걸린 현수막의 홍보 효과가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일방적 메시지만을 전달하고, 자동차와 보행자의 시야를 가리는 데다 도시 미관까지 해치는 현수막 공해를 언제까지 견뎌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