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조승우는 데뷔 24년 만에 첫 연극 무대에 올랐다. 그의 출연 소식이 알려지자, 연극 ‘햄릿’을 공연하는 1000석 규모의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은 예매 시작 직후 전 회차 매진을 기록했다.  예술의전당 제공
배우 조승우는 데뷔 24년 만에 첫 연극 무대에 올랐다. 그의 출연 소식이 알려지자, 연극 ‘햄릿’을 공연하는 1000석 규모의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은 예매 시작 직후 전 회차 매진을 기록했다. 예술의전당 제공

명창 이연주는 셰익스피어 4대 비극을 판소리로 ‘번역’하는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 국립창극단 활동을 병행하며 2012년 ‘맥베스 부인’과 지난해 ‘더 리어’에 이어 올해 ‘햄릿’을 준비했다. 내년 ‘오셀로’까지 무대에 올릴 예정이다.   줄단앤파트너스 제공
명창 이연주는 셰익스피어 4대 비극을 판소리로 ‘번역’하는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 국립창극단 활동을 병행하며 2012년 ‘맥베스 부인’과 지난해 ‘더 리어’에 이어 올해 ‘햄릿’을 준비했다. 내년 ‘오셀로’까지 무대에 올릴 예정이다. 줄단앤파트너스 제공


■ 조승우·이연주 ‘2色 햄릿’

유독 올해 들어 셰익스피어 원작의 ‘햄릿’ 공연이 잇따랐다. 지난여름 국립극단 기획의 ‘햄릿’은 서늘한 공주로 탈바꿈됐고, 신시컴퍼니의 ‘햄릿’은 관록이 돋보였다.

올가을도 2편의 서로 다른 ‘햄릿’이 찾아왔다. 배우 조승우가 예술의전당 기획의 ‘햄릿’(연출 신유청) 무대에서 정통 연기를 선보인다. 그리고 전통 판소리를 통해 전에 없던, 그러나 한국 정서에 익숙한 새로운 ‘햄릿’에 도전하는 명창 이연주의 창극도 눈길을 끈다. 두 작품은 전혀 달라 보이지만, 관객이 햄릿을 통해 자신을 들여다보기를 의도했다는 점에서 상통하는 면이 있다.

예술의전당 제공
예술의전당 제공


조승우의 ‘명품 햄릿’

매끄러운 대사·여유로운 연기
캐릭터 대한 깊은 이해 돋보여


◇조승우의 ‘정통 햄릿’ = “시대도 변했고, 이제는 힘도 빼고 더 자연스러워져야 할 것 같아. 우리 연극을 한번 거울이라고 생각해 보자고. 있는 그대로 모습을 정직하게 비춰내는 거울.” 조승우가 구축한 햄릿 캐릭터는 이 대사에 응축돼 있다. 이 말대로 그의 햄릿은 매끄럽게 귀에 들어오는 구어체의 대사를 구사한다. 다른 인물과도 일상 음조로 대화를 이어가고, 콩트를 연상시키는 연기로 여유까지 부린다. 분노에 찬 비명을 지르는 독백으로 전환하는 순간에도 조승우의 감정은 극의 흐름을 깨지 않는 적정선을 유지한다. 치열한 연구를 거듭한 배우가 캐릭터에 정통한 상태로 무대에 올랐다는 인상을 준다. ‘거울’이라는 표현대로, 관객은 저마다의 기억과 감정을 무대 위 햄릿을 통해 되돌아보게 된다.

신유청 연출은 통화에서 “땅에 붙은 햄릿이랄까. 우리하고 다른 특별한 햄릿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든 만나볼 수 있는 인물이기를 바랐다”고 전했다. 아버지 선왕은 숙부에 의해 살해됐는데 그 슬픔이 가시기도 전에 그 살인자와 결혼한 어머니를 보며, 햄릿이 복수와 좌절 사이 딜레마에 시달리는 원작 내용은 잘 알려져 있다. 1601년 영국 런던에서 초연 이후 햄릿은 공연작마다 다른 해석을 낳아 왔다.

신 연출은 “뭔지 모르겠지만 심오한 철학이 있어 보이는 햄릿은 원하지 않았다”며 “묵묵히 삶을 살아낸 그저 한 인간이라는 점에서 배우와 생각이 통했다”고 덧붙였다.

다만 이 햄릿의 강한 존재감은 양날의 칼이 되기도 했다. 드라마에서 조승우와 찰떡 호흡을 보인 배우 박성근이 맡은 ‘클로디어스’, 정재은의 ‘거트루드’ 등의 존재감이 아쉬웠다. 작품 자체의 초점이 햄릿에 맞춰져 있는 데에 따른 한계였지만, 햄릿의 숙부이자 원수로서 혹은 그 원수와 결혼한 어머니로서 더욱더 복합적 면모를 보여줬으면 하는 아쉬움도 나왔다. 공연은 다음 달 17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계속된다.

줄단앤파트너스 제공
줄단앤파트너스 제공


이연주 ‘1인 창극 햄릿’

역할에 빙의한듯 구슬픈 소리
한국적 정서 담은 노래에 집중


◇이연주의 ‘전통 햄릿’ = 국립창극단 수석 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판소리 명창 이연주의 1인 창극이다. 외국 작품의 ‘번역’은 원어를 한국어로 바꾼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작품의 취지는 이보다 더 나아간 번역을 시도한다는 데 있다. 한국 정서를 표현하는 전통의 소리로, 또 다른 햄릿을 만들어낸 것이다. 애초 셰익스피어의 원작 공연에서 배우들 모습은 연기보다 노래에 가깝다는 점에서 착안했다. 연극 대사로의 번역에서 유실된 음률을 판소리로 옮겨 되살려보는 공연이다. 드라마 ‘오징어게임’ 등으로 이름을 알린 김성수 음악감독이 연출과 각색을 맡았다.

“관객이 햄릿의 시선으로 자신을 보는, 햄릿이 관객의 거울이 되는 공연.” 공교롭게도 김 감독 또한 이번 햄릿 공연에서 ‘거울’을 강조했다. “잘 알려져 있는 햄릿의 줄거리를 판소리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관객이 햄릿이 되어 보는 체험에 가까운 자리가 되면 좋겠다.” 서울 서초구의 한 연습실에서 만난 두 사람이 보여준 햄릿에는 움직임이 거의 없었다. 소리꾼이 흥을 돋우는 팔짓은커녕, 눈빛마저 허공에 고정한 채 이연주는 햄릿에 ‘빙의’한 듯이 구슬픈 소리를 냈다. “다가올 운명을 어찌 하겠나” 등 소리에만 관객을 집중시키겠다는 것이다.

여름 두 달간 영국 런던에 머물며 이 작품을 쓴 이연주는 “내가 본 햄릿은 그저 불쌍한, 모든 것을 잃은 한 인간”이라며 “셰익스피어라는 이름을 걷어내고 보면 그가 겪은 일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는 게 보인다”고 했다. 오는 30일부터 이틀간 서울 국립극장에서 공연한다.

서종민 기자 rashomon@munhwa.com
서종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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