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종자 개량하고 가꾼 무궁화 앞에 선 노년의 류달영 선생.
자신이 종자 개량하고 가꾼 무궁화 앞에 선 노년의 류달영 선생.


■ 그립습니다 - 성천 류달영(1911~2004) 선생 20주기에 <상>

류달영 선생. 나는 그를 한 번도 직접 만난 적이 없다. 하지만 나는 이미 그를 알고 있었다. 그의 글과 활동으로, 먼발치에서 직접 봬온 여의도 주민의 이야기로. 그리고 지금은 그가 생전에 창립한 성천문화재단의 직원으로서 나는 재단 곳곳에 밴 그의 흔적에서 늘 그를 만난다.

어렴풋이 그를 기억한다. 어릴 적에 우리나라 꽃 무궁화에 대해 배울 때면 항상 무궁화 박사로 그의 이름이 나왔다. 성인이 되어서는 여의도 토박이 주민으로부터 “그렇게 대단하신 분이 항상 치매 걸린 부인의 손을 꼭 잡고 산책하신다”는 경의에 찬 목격담으로 그를 기억한다. 그에 대해 “대단하신 분”이란 것만은 익히 풍문으로 들어 알고 있었는데, 그 목격담으로 인해 그는 더욱 “대단하신 분”으로 내 맘속에 새겨졌다. 훗날 기쁘게도 “대단하신 분”이 세운 성천문화재단의 직원이 되었고, 그가 추구해 온 일들을 실행하면서 그를 탐구했다. 그는 어떤 인물이었고, 어떤 역사의식을 지니고 자기 시대를 살았을까. 그 시대를 살면서 그는 어떤 문제의식을 느끼고 그것의 해결을 위해 무엇을 했을까. 그는 국가와 사회, 그리고 자기 삶에 대해 어떤 비전과 미션을 갖고서 살아갔으며 얼마만큼 그것을 성취했을까.

그에 대해 탐구하면 할수록 “대단하신 분”이란 말로도 부족한, 그야말로 “놀라운 분”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뿐이었다. 대한민국이 그렇게 가난한 나라에서 오늘날의 “놀라운” 국가가 된 것은 바로 이러한 인물들이 곳곳에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것도 새롭게 발견할 수 있었다. 그는 자기 삶의 시기마다 그 시대가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최선의 것으로 응답했다. 그 응답은 1991년 그가 80세의 고령이 되어서도 멈추지 않았다. 농학자이자 농민운동가로서 그는 스스로 농부가 되어 평생 일궈온 ‘평화농장’을 사회에 환원하여 재벌들이나 세울 수 있는 ‘재단’을 세운 것이다. 우리나라가 산업화, 도시화가 한창 무르익어가던 무렵, 그가 가진 문제의식은 인간 소외였고, 그 해결책은 인간성 회복이었다. 이 문제에 대한 그의 응답은 인문 고전 교육을 통한 의식 개혁과 한국인의 정체성 회복, 그리고 문화복지주의였고, 이 응답은 성천문화재단을 통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말년에 평화농장에서 함께한 류 선생과 부인 이창수 여사.
말년에 평화농장에서 함께한 류 선생과 부인 이창수 여사.


그는 일제강점기에는 어머니가 될 여성의 교육이 조국 독립의 초석이 된다는 확신으로 여학교 교사가 되었고, 전쟁의 폐허지에서는 낙담한 민족에게 자신의 저서 ‘새 역사를 위하여’를 통해 용기와 희망,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구체적인 길을 제시했다. 또한 국가 재건기에는 전국적인 국민운동을 일으켜 이후 새마을 운동의 기반을 다졌다. 군사정권 시절, 혁명정부에 민정이양의 약속을 지킬 것을 호소했고 삼엄했던 계엄 아래에서도 군부의 탄압을 비판했다. 오늘날 일반화되어 있는 간소한 가정의례, 평생교육도 처음 그에 의해 제안되어 이뤄졌다. 그밖에 대한민국이 자리를 잡아가던 시기에 다양한 분야에서 필요로 하는 것들이 그의 주도로 창립 혹은 설립되었고, 그는 그 일의 발전과 안정에도 크게 기여했다.

그가 살아온 삶의 여정을 살펴볼 때마다 나는 그를 더욱 깊이 만난다. 그가 쓴 ‘인간은 만남으로 자란다’라는 서예 작품이 재단의 강의장에 걸려 있는데, 이 만남은 꼭 살아있는 자와의 만남만을 말하는 것이 아님을 안다. 나는 그의 삶의 발자취에서도 그를 만나고 그가 남긴 글과 글씨에서도 그를 만난다. 가끔은 그가 남긴 이러한 흔적들에서 그가 겪었을 난관과 고뇌도 느낀다. 그가 제시한 희망적이고, 긍정적인 비전이 거저 나오진 않았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빛나는 그의 업적들 이면에 감춰진 어둠과 결함은 무엇이었을까.

윤수민(성천문화재단 아카데미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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