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배기배추와 양념게장을 곁들인 완도산 전복회. 전복회는 혀끝에 느껴지는 맛도 맛이지만, 오독오독한 식감이 더 매력적이다.
알배기배추와 양념게장을 곁들인 완도산 전복회. 전복회는 혀끝에 느껴지는 맛도 맛이지만, 오독오독한 식감이 더 매력적이다.


■ 이우석의 푸드로지 - 아는 사람만 아는 ‘가을 전복’

한여름부터 11월까지 살 올라
더 고소하고 진한 감칠맛 별미

부드럽고 쫄깃한 참전복부터
까막전복·말전복 등 종류 다양

임금님 수라상 올랐던 진상품
中선 말린 전복 화폐로 쓰기도


철이 되면 으레 나오는 말이 있다. 요즘도 가을 전어, 가을 삼치, 가을 방어란 말이 돌아다닌다. 하지만 ‘가을 전복’이란 말은 낯설다. 아는 사람은 잘 안다. 전복이 가을에 특히 제맛이 난다는 것을. 한여름부터 11월까지가 살을 채운 전복이 더욱 고소하고 진한 감칠맛을 내는 시기다.

전복은 예로부터 값진 해산물로 꼽혀온 바다의 진미다. 양식하기 전엔 일일이 물속에 들어가 채취하기도 어려워 가히 ‘바다의 황제’로 불리기도 한다. 전복은 엄밀히 말해 조개가 아니다. 흔히 조개(shellfish)라 부르는 것은 2장 한 쌍의 껍데기 속에서 생활하는 연체동물을 말한다. 정확히는 이매패류(二枚貝類)만을 지칭하는 말이다. 그런데 전복은 껍데기가 한 장뿐이다. 달팽이처럼 등에 껍데기를 진 채, 배에 붙은 제 발(복족)로 돌아다닌다. 이동이 어려워 흙 속에 파묻혀 바닷물 속 플랑크톤 등을 걸러(여과 섭식) 먹고사는 일반적 조개 종과는 다르다.

전복이 속한 복족류는 먹이를 찾아 돌아다니며 촉각(더듬이)도 있고 이빨(치설)도 있다. 소라나 고둥, 다슬기 모두 이에 속한다. 그런데 국민 모두가 생물학자는 아닌지라, 실생활에서는 이들까지 죄다 통틀어 ‘조개’로 취급한다. 전복의 분류는 연체동물문 복족강 원시복족목 전복과 전복속. 따로 족보가 있는 가계도다.

미역이나 다시마 같은 갈조류를 좋아하는 전복은 먹이를 찾아 꽤 장거리를 기어다닌다. 바위에 흡착한 상태로 느릿느릿 기어다니는데 이때 안테나처럼 생긴 촉각이 제 역할을 한다. 껍데기를 방패 삼아 바닥에 딱 붙어 있으니 호흡은 일반 조개처럼 껍데기를 열었다 닫았다 하는 것이 아니라 송송 뚫려 있는 구멍으로 해결한다. 먹잇감을 만나면 치설로 쓱싹쓱싹 갉아먹는다. 먹어 치우는 속도는 생각보다 빠르다. 커다란 미역이나 다시마 한 줄기를 단 몇 분 만에 해치운다. 이처럼 무지막지한 섭식 습관 덕에 사람들이 전복을 영양덩어리에 맛까지 좋은 고급 보양 식재료로 인식하게 됐다. 기력회복을 위해 산모들이 전복을 많이 먹는 이유다.

전복 살과 내장에 녹두와 쌀을 넣고 죽으로 끓여내면 구수하고 맛도 좋거니와 단백질과 콜라겐이 많아 유익하다. 또 뼈 건강에 도움되는 칼슘 등 무기질 공급에 딱이다. 내장을 넣으면 녹황색을 띠는데 내장 덕에 맛이 더 좋아진다. 전복 중에서는 다시마를 먹여 키운 것을 제일로 친다. 전복 양식장 옆에 다시마를 따로 키우는 이유다.

왼쪽 사진부터 서울 을지로 ‘비진도’의 전복구이, 간장게장처럼 맛간장을 달여 만드는 전복장, 전복 한 마리를 통째로 넣어 만드는 완도 장보고빵, 서울 남가좌동의 중식당 ‘락희안’의 전복돌판누룽지탕.
왼쪽 사진부터 서울 을지로 ‘비진도’의 전복구이, 간장게장처럼 맛간장을 달여 만드는 전복장, 전복 한 마리를 통째로 넣어 만드는 완도 장보고빵, 서울 남가좌동의 중식당 ‘락희안’의 전복돌판누룽지탕.


전복에도 종류가 많다. 우리 해역에서 잡히는 것은 바로 참전복(북방전복)이다. 익히면 부드럽고 회로 먹어도 육질이 딱딱하지 않다. 삶으면 적당히 쫄깃한 식감을 내니 한국인의 입맛에 딱 맞는 종이라 양식은 보통 참전복으로 한다. 가끔 까막전복(둥근전복)도 나온다. 색이 어둡고 육질이 단단한 종이다. 커다란 말전복도 있다. 보통 어른 손바닥만큼 크고 육질은 부드럽다.

예전에 제주도 해물뚝배기에 들어가던 오분자기는 아예 다른 종이다. 전복과 모양새가 거의 비슷하지만 크기가 작고 패각의 구멍이 7~8개 정도로 전복보다 많다. 껍데기도 전복보다 매끈한 편이다. 요즘은 이마저도 귀해 전복 새끼를 대신 쓴다.

한국은 전복을 유난히 즐기는 나라 중 하나다. 임금의 수라상에 오르는 중요한 진상품으로 복어(鰒魚)라 명시하고 특별 관리했다. 전복은 실로 여러 요리에 쓰였는데 특히 탕(국)과 죽, 찜, 구이 등의 주재료로 쓰이거나, 음식을 빛내는 감초 역할을 해왔다. 전복 삼계탕이 대표적이다. 유통이 자유로워진 요즘은 전복을 실어와 횟감으로 많이 먹는다.

치설 등을 제외하고 버릴 것이 하나도 없는 전복은 식재료로서뿐 아니라 다용도로 귀한 재료였다. 껍데기 역시 공예(자개)의 재료로 사랑을 받았다. 자개장의 영롱한 빛은 주로 전복에서 나왔다. 통영의 나전칠기가 유명한 것은 바로 인근 바다에 전복이 많이 났던 까닭이다. 나전칠기는 일찌감치 백제 무령왕릉에서도 발견됐고 신라에서도 칠기를 만드는 관청 칠전(漆典)을 뒀을 정도로 그 역사가 깊다. 이미 오래전부터 여러 목적으로 전복을 잡아 썼다는 얘기다.

전복을 높이 취급하기로는 중국도 마찬가지다. 중국의 특성상 특권층은 해삼처럼 바싹 말린 전복을 주로 먹었는데 말린 전복은 화폐로도 통용될 만큼 가치가 있었다. 건전복을 건해삼, 건표고 등과 묶어 건화(乾貨)라 칭하며 실제 통화로 썼다. 돈을 뜻하는 화(貨) 자에 조개 패(貝)가 괜히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요즘도 중국에선 건어물을 여전히 건화라 부르고 있다.

건전복은 보통 여러 날 불린 다음 찜으로 먹거나 육수를 낸다. 건해삼도 마찬가지지만 생전복과 건전복의 맛은 많이 다르다. 말릴 때도 취급이 어렵고 불릴 때도 마찬가지다. 물을 매일 갈아줘야 하는 등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비싸다. 건전복으로 낸 국물맛은 시원하면서도 감칠맛이 난다. 중식 중 최고급 요리에 속하는 불도장에도 건전복 육수를 쓴 것을 최고로 친다.

참고로 중식당 고급 메뉴 중 전가복(全家福)이라고 있는데 가끔 전복도 들어가긴 하지만 전복 요리라고 볼 수는 없다. 한자도 다르다. 전가복은 해산물과 고기, 채소 등 갖은 재료를 두둑이 넣고 주방장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차려 내는 요리다.

전복이라면 죽고 못 사는 것은 일본인도 마찬가지다. 전복에 청주를 부어 살짝 쪄낸 무시아와비(蒸しアワビ)는 고급 일식 차림상에 나오는 전채요리다. 오랜 시간 약한 불로 쪄낸 전복 살점의 부드러움이 거의 순두부 수준이다. 오징어처럼 오밀조밀하게 칼집을 내서 구워 먹기도 하고 전복을 넣어 지은 솥밥을 낼 때도 있다. 우리나라보다 전복이 월등히 비싼 일본에선 알뜰살뜰 먹는다. 내장을 풀어 버터와 볶아서 만든 ‘게우’를 소스처럼 즐긴다.

서양에서는 보통 버터구이를 한다. 일식 전복 버터구이와는 칼질 방식이 조금 다르다. 망고처럼 격자로 칼집을 낸 후 그 위에 버터를 올리고 오븐에 구워내면 버터가 녹아 살점 사이로 스며들며 고소한 맛을 더한다. 이렇게 구운 전복은 프렌치나 이탈리안 풀코스 요리 중 메인이 나오기 전에 별미로 내기도 하고 스테이크에 가니시로 쓸 때도 있다. 전복이 많이 나는 호주에선 아예 큼지막한 전복을 스테이크처럼 구워 서프 앤드 터프(Surf and Turf·해산물과 육류가 같이 나오는 요리)로 차려 내는 경우도 있다.

다른 해산물도 그렇듯 전복 역시 크기가 클수록 가격이 확 뛴다. 전복의 크기 계량은 미로 언급하는데 미는 마릿수를 뜻하는 미(尾)에서 나왔다. 1㎏에 몇 마리가 해당하는지에 따라 미가 결정되니 숫자가 작을수록 크다. 예를 들어 일반적으로 보는 크기인 10미짜리는 열 마리에 1㎏이 나간다는 뜻이다. 특대는 7~8미 정도, 4~5미는 어른 주먹만큼이나 큰 전복이다.

다년생인 전복 양식은 마치 인삼 농사처럼 오래 길러야 하는 까닭에 5미 이상 나가는 크기만큼 수확하려면 생육조건이 아주 좋아도 몇 년 이상 걸린다. 작은 치는 흔하다. 18~20미짜리 전복은 술집에서 파는 해물라면이나 짬뽕에 든 것을 가끔 볼 수 있다. 크기뿐 아니라 자연산과 양식산도 가격 차이가 꽤 난다. 자연산 전복의 패각에는 따개비 등 많은 수생생물이 붙어 있어 마치 물속에 굴러다니는 돌멩이처럼 보인다.

아무튼 바다의 황제는 지금 살이 통통히 오른 채로 식탁에 오를 채비를 마쳤다. 이처럼 다채로운 조리법으로 즐길 수 있는 해산물이 또 있을까. 진주를 발견하지 못하더라도 고단백에 좋은 영양 성분까지 품은 전복 한 점이면 다가올 추위도 걱정 없다.

놀고먹기연구소장

■ 어디서 먹을까

◇비진도 전복구이 = 서울 을지로에 위치한 전복 전문점이다. 점심엔 전복이 든 해물뚝배기가 나오고 저녁엔 굽고 쪄낸 전복 요리를 다양하게 즐길 수 있다. 전문점이니 솜씨도 당연히 좋다. 익힘 정도가 좋아 살점이 부드럽게 이에 들러붙는다. 식사 메뉴와 함께 코스로 나오니 어느 날 문뜩 전복을 실컷 먹고 싶다면 이곳을 찾으면 당장 해결될 일이다. 서울 중구 을지로 54-1, 2층.

◇락희안 = 다른 요리도 소문났지만 전복 돌판 누룽지탕이 이 집의 상징 메뉴다. 전복을 중심으로 신선한 해물을 넣고 팔팔 끓여낸 누룽지탕으로 맛볼 수 있어 색다르다. 전분이 녹아난 부드러운 국물엔 갖은 해물의 풍미가 진하게 배어 있고, 전복과 오징어, 주꾸미 등 해물은 살이 야들야들하다. 건전복을 쓰진 않는다. 서울 서대문구 가재울로4길 53-1, 2층.

◇튼실이네 전복 = 입구부터 수조에 활전복이 가득한 곳. 그야말로 전복 전문점이다. 전복을 대복, 중복 등 크기로 구분해 판다. 큰 전복(대복)은 그 자체로 구워 먹고, 중간 크기 전복(중복) 12미를 가장자리에 두르고 가운데 삼겹살을 올려 굽는데 서로 퍽 어울린다. 불판에 열이 오르면 바로 제각각 꿈틀대는 싱싱한 전복의 활력을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전남 목포시 평화로 97.

◇참예그리나 = 보리굴비과 강황밥 등 정갈한 식사 메뉴로 유명한 인천 송도 맛집. 저녁에는 유황 삼겹살, 한우차돌박이를 싱싱한 전복과 곁들여 맛볼 수 있다. 기름진 고기와 담백한 전복이 어우러지는 맛의 화음을 경험할 수 있는 곳. 딸려 나오는 김치 등 반찬도 면면이 훌륭하다. 인천 연수구 갯벌로 12 미추홀타워 별관 B동, 지하 1층.

◇유화초 전복죽 = 경북 포항 죽도시장에서 전복죽으로 유명한 곳. 주문 즉시 싱싱한 활전복을 꺼내 썰어 죽을 쑨다. 언뜻 보기에도 진한 색을 낸다. 한술 뜨면 전복 내장의 풍미가 쌀에 알알이 스몄다. 짭조름하고 구수한 맛에 숟가락이 멈출 줄을 모른다. 씹는 맛을 위해 토핑으로 삶은 전복살을 썰어 올렸다. 포항 북구 죽도시장2길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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