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증손녀가 미공개 편지 대거 발견
“한국생활 당시의 경험 등 담겨
아직 읽는중이라 내용 못 밝혀
적절한 시기 공개·기증할 수도”
뉴저지(미국)=글·사진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내 증조부 아펜젤러 선교사는 유머가 넘치는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일찍 돌아가셔서 남은 기록이 별로 없었는데 최근 친척 집에서 편지가 무더기로 발견됐어요. 근엄한 사진만 보고 자랐는데, 편지를 읽으며 그가 유쾌하고 따뜻한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었죠.”
한국 기독교 확립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선교사 헨리 거하드 아펜젤러(1858∼1902)의 증손녀 쉴라 플랫(76) 여사는 지난 29일(현지시간) 미국 뉴저지주 매디슨시에 있는 드루신학교에서 국내 취재진과 만나 이같이 말했다. 드루신학교는 아펜젤러와 그의 뒤를 이어 역시 선교사가 된 아들 헨리 닷지 아펜젤러(1889∼1953)의 모교다. 닷지 아펜젤러의 손녀인 플랫 여사는 이날 “증조부에 관한 문서가 집안에서 발견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라면서 “아직 읽고 있는 중이라 내용을 자세히 밝힐 수는 없다”고 했다. 다만, 그는 “편지에 당시 한국 상황과 생활이 담겨 있기에 적절한 때가 되면 공개하고, 한국에 기증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아펜젤러는 한국에 기독교를 전파한 초기 선교사 중 한 명으로, 주로 교육 사업에 열정적이었다. 정동제일교회와 함께 근대 교육의 산실인 배재학당을 설립해, 기독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기억하는 이름이 됐다. 국내 기독교계는 연세대를 설립한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와 아펜젤러가 인천 제물포에 도착한 1885년을 ‘한국 기독교의 시작’으로 본다. 따라서, 한국 기독교 창립 140주년이 되는 2025년을 앞두고 다음 달부터 대대적인 기념사업을 시작한다. 이러한 때에 아펜젤러의 미공개 편지가 발견돼 그 의미를 더하고 있다.
플랫 여사는 “증조부를 만난 적은 없지만 조부와 어머니로부터 매일 한국에 대해 많이 듣고 배웠다”고 했다. 그는 “그들은 증조부가 한국인들을 얼마나 깊이 사랑했는지 늘 강조하셨다. 처음엔 한국어도 못했던 그가 한영사전을 편찬했으니 그 헌신이 얼마나 대단한지 지금도 자주 생각하곤 한다”고 했다. “하지만 한국과 한국인은 오늘처럼 제 삶에 더 큰 기쁨을 가져다주네요. 어머니가 그러셨거든요. 한국인들이 세상에서 가장 관대한 사람들이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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