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세계 5대 수출 강국’에 진입하는 일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이른바 ‘넘사벽’ 같은 수출 규모를 자랑하는 1위 중국은 지난 2023년 기준으로 총 수출액이 3조 달러를 넘는다. 첨단 산업부터 농산물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수출 품목을 보유한 2위 미국도 연간 수출액이 2조 달러 이상이다. 3·4위인 독일·네덜란드도 1조 달러를 웃돌거나 근접해 있다. 일본은 최근 한국보다 근소한 수치로 앞서 왔지만, 아시아에서 전통적인 제조업 강국이다. 게다가 한일 간의 미묘한 경쟁 심리로 인해 쉽사리 5위 자리를 비켜주지 않을 태세다. 한국이 올해 수출 목표 달성을 위해 ‘막판 스퍼트’가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만약 올해 수출 목표를 달성한다면 내년에는 어떨까. 지속적인 수출액 증가와 5대 수출 강국의 위치를 공고히 하는 것 역시 호락호락하지 않아 보인다. 특히, 한국 수출의 특성상 반도체나 자동차, 조선 등 경쟁력이 강한 특정 품목 위주의 수출 확대 전략은 중국 같은 경쟁국의 부상으로 그 지속성을 담보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이렇듯 품목별 경쟁력 강화가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는 새로운 판로 개척이 하나의 돌파구가 될 수 있다.
정부도 이런 상황을 잘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 때마침 지난 8월 22일 국정현안관계장관회의에서 정부의 ‘통상 정책 로드맵’이 확정됐다. 1994년 정부의 대외통상 능력 강화를 위해 ‘상공자원부’가 ‘통상산업부’로 개편된 후 꼭 30년이 되는 해의 일이다. 또, 2003년 자유무역협정(FTA) 로드맵 도출, 2013년 현재의 산업통상자원부 출범을 거쳐 성립된 한국의 첫 통상 정책 청사진이다. 따라서 이번 로드맵은 통상 전담 부처의 30년 노하우와 정책 연구 결과가 담긴 회심의 전략이라고도 할 수 있다. 세계무역기구(WTO)를 중심으로 하는 다자 통상 체제가 약화하는 등 국제적 통상 질서 패러다임이 전격적으로 변화하는 시점에 수립된 로드맵이라 그 의미가 더 깊게 새겨진다.
로드맵의 골자는 이번 정부 임기 내에 국내 수출 업계가 전 세계 국가 중 가장 넓은 ‘경제 운동장’에서 활약할 수 있도록 한다는 내용이다. 현재 가장 넓은 FTA 네트워크를 차지하고 있는 국가는 싱가포르다. 지난해 말 기준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87%를 경제 운동장으로 쓰고 있다. 한국은 그 뒤를 이어 85%를 쓰고 있는 2위다. 정부의 로드맵은 GDP의 90%까지로 경제 운동장을 확대, 이 분야 1위가 되겠다는 것이다.
로드맵에 담긴 내용이 아주 불가능한 계획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당장 이미 타결된 걸프협력회의(GCC, 사우디아라비아·카타르·쿠웨이트·바레인·오만·아랍에미리트 등 6개국)와의 FTA가 발효되면 전 세계 GDP의 약 2%가 한국의 경제 운동장에 추가된다. 그 외에 아랍에미리트(UAE), 필리핀, 에콰도르 등과의 FTA도 발효만 남겨 둔 상태다. 이미 타결된 FTA만 발효되더라도 싱가포르를 추월할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 더해 한·일·중 FTA 협상 재개 추진, 말레이시아 및 태국과의 FTA 협상 가속화도 경제 운동장 확대 전략을 뒷받침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