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친구와 연인, 그리고 무시무시한 그것
매튜 페리 지음│송예슬 옮김│복복서가
“어차피 다 까발려진 마당에 더 감출 비밀도 없다.”
배우 매튜 페리가 자신의 ‘척하는 삶’을 털어놓은 책이다. 세기의 시트콤 ‘프렌즈’에서 2004년까지 10년간 그가 맡은 ‘챈들러 빙’은 당대 미국인의 말투까지 바꿔놨다. 비꼬는 투로 냉소하는 표정인데 감탄을 일으키는 특유의 언어 감각으로 전 세계인을 웃겼다. 그런데 챈들러 빙이 세계를 웃기는 동안 매튜 페리는 ‘괜찮은 척’하며 중독과의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프렌즈 시즌마다 몸무게를 가늠하는 것으로 중독 궤적을 추적해볼 수도 있다. 살이 불었다 싶으면 술에 중독된 거고, 말랐다 싶으면 약에 중독된 것이다. 염소수염을 길렀다면, 그건 약을 무지 많이 했다는 뜻이다.” 한때 연인이던 줄리아 로버츠가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는 모습을 중독치료시설 텔레비전으로 지켜봤고, 열흘 동안 움직이기는커녕 대변도 보지 못했고, 흡연 욕구에 시달리다 머리를 수차례 벽에 찧고는 쓰러졌던 경험 등을 고스란히 써놨다. 2만 명 앞에서 떠드는 것은 전혀 두렵지 않았지만 혼자 소파에 앉아 밤을 보내는 것은 두려웠다는 기억도 꺼낸다.
자기 연민에 빠진 유명 배우의 넋두리 아닌가. 오히려 이렇게 생각할 이의 책장에 꽂아두기를 권하고 싶은 책이다. 자신이 ‘강한 척’을 하고 있다고 자각할 언젠가 펼쳐본다면, 위로해줄 책이기 때문이다. “고통받고 있는 모두에게. 누군지 알잖아.” 매튜 페리가 속표지에 적어뒀듯이 ‘척’의 고통 없이 사는 사람은 없다. 그는 자신의 ‘척’ 이야기를 꺼내기 위해 어린 시절까지 되돌아본다. 그것을 걷어낸 다음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들여다본다.
매튜 페리는 “이제 괜히 ‘척’을 할 필요가 없다. 내가 누군지 알렸으니까. 앞으로는 느긋하게 앉아 즐길 시간”이라며 마음을 놓는다. 그는 이 책의 첫 줄부터 마지막까지 단 한 문장으로도 남을 탓하지 않았다. 지난해 자신을 죽음에 이르게 한 원인에 대해서도 같은 마음일 것이다. 400쪽, 1만8500원.
서종민 기자 rashomo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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