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중국에 거주하는 우리 교민이 중국 반(反)간첩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사건이 알려지면서 해묵은 논란이 되풀이되고 있다.
중국은 반간첩법을 개정해 2023년 7월 1일부터 시행하고 있는데, 핵심은 적용 범위를 확대했다는 점이다. 이 법 제4조는 중국의 안보를 해치는 활동뿐만 아니라, 국가기밀 및 정보, 국가 안보와 이익에 관한 문건·데이터·자료·물품을 절취·정탐·매수·불법 제공한 개인까지 간첩으로 분류한다. 이 규정은 국가기밀 및 정보가 무엇인지 등에 대해 명확한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자의적 해석과 적용 우려가 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국내에서 다시 간첩 행위 처벌과 관련한 지적이 되풀이되고 있다. 이러한 논란을 정확히 짚기 위해 간첩의 정의를 명확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미국 코넬대 로스쿨 법률정보연구소에 따르면 간첩(espionage)이란, 비밀정보를 수집하거나 부정행위를 적발할 목적으로 개인·기업·정부 등을 염탐하거나 몰래 감시하고, 그 정보를 다른 기관이나 국가에 전달하는 범죄다. 따라서 적지 않은 국가의 관련 법률은 간첩을 전자와 같은 범위로 규정한다.
미국 법은 자국에 해를 끼치거나 외국의 이익을 위해 국방에 관련된 문서, 저술, 스케치, 사진, 설계도, 지도, 메모, 기구 또는 정보를 외국 정부와 교신·전달·전송하거나 시도하는 자는 사형 또는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 주석에서, ‘외국 정부’라 함은 외국 군대뿐만 아니라 외국의 정당·부처·기관을 포괄해 이를 위해 행동하는 모든 사람이 이 법의 적용 대상이 된다고 밝히고 있다. 간첩 행위의 대상을 ‘적국’이 아닌 ‘외국’을 위한 행위로 규정하는 것이다. 중국의 개정 반간첩법도 이러한 경향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외국을 위한 간첩 활동을 벌인 사람을 간첩죄로 처벌할 법적 근거가 없다. 형법 제98조는 적국을 위해 간첩 행위를 하거나 직무상 알게 된 군사상의 기밀을 적국에 누설하는 경우만을 간첩죄로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점은 오래전부터 학자들이 지적해 왔고, 그 당위성과 필요성이 충분하다. 그런데도 이를 ‘외국’으로 개정하는 논의는 제자리걸음을 계속하고 있다. 이는 중대한 국익을 훼손하는 정보를 수집, 누설하는 경우조차 상대가 북한이 아니면 형법상 간첩죄로 처벌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게 한다. 최근 한 군무원이 정보사 ‘블랙 요원’에 관한 정보를 중국 내 조선족에게 넘긴 혐의로 구속기소됐지만, 간첩죄를 적용받지 않았던 경우가 대표적이다. 중대한 국익을 침해하는 실질적 간첩 행위임에도 중죄 경벌에 그치는 것이다.
제21대 국회의 경우 4건의 개정안이 발의됐었으나,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간첩 행위의 범위나 국가기밀 유출 행위를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해서 처리되지 못했다. 미국과 중국의 관련 법에서 규정한 간첩의 정의와 간첩 행위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 제22대 국회 들어서도 여야 의원들이 간첩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이라니 처리가 시급하다. 헌법 제46조는 국가이익을 우선할 것을 국회의원의 의무로 규정하고 있다. 무엇이 우선해야 할 국가이익인가? 국회의원들은 헌법상의 의무를 다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