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통령이 국회에서 하는 시정연설은 말 그대로 국정(政)을 어떻게 펼칠지(施) 설명하는 자리다. 국가원수이자 행정부 수반으로서 국회에 제출한 예산안의 심의·처리를 당부하면서, 나라 살림만 아니라 국정 전반의 운영 방향을 밝힌다. 이승만 전 대통령이 1948년 정부 수립 뒤 9월 30일 ‘시정방침’이란 제목으로 한 것이 헌정사 첫 시정연설이라고 한다.
1987년 헌법 개정 이후 국회법의 ‘예산안에 대하여는 본회의에서 정부의 시정연설을 듣는다’는 조항에 따른 첫 시정연설은 1988년 노태우 전 대통령이 했다. 하지만 첫해뿐이었고, 이후 국무총리 대독이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 때까지 관행처럼 굳어졌다. 국회 본회의장 연단에 다시 선 것은 지난 2003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었으나 그 역시 첫해뿐이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마찬가지였다. 반면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3년부터 4년 연속 시정연설을 했고, 문재인 전 대통령은 5년 동안 본예산은 물론 추경까지 6번을 했다.
대통령의 국회 연설은 담화나 기자회견과 같이 대국민 메시지 발신의 의미도 있지만, 정치적 의미가 더 크다. 국정 과제를 법률로 완결하는 입법 리더십의 시험대가 된다. 새로 구성된 국회의 개원식, 연례적인 시정연설이 공식적인 기회인데 현안과 관련해 국회 연단에 선 사례도 많았다. 국회 연설 횟수는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 여야 구도, 정국 상황의 일단을 보여준다. 이승만(12년 집권)은 25회의 국회 연설을 했다. 매년 두 번씩은 국회에 갔다.
박정희(18년) 8회, 전두환(7년) 6회였다. 노태우(이후 5년)·노무현 각 4회, 김영삼 3회, 이명박 3회, 김대중 1회였다. 시정연설은 불리한 정국을 돌파하는 방편이 되기도 했다. 군사정부 불식이 과제였던 노태우는 ‘민주번영의 통일시대’를 선언했고, 노무현은 측근 비리 곤욕에 재신임 국민투표 실시를 제안했다. 이명박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운동이 확산하자 ‘녹색성장’을 꺼내 들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4일 내년 예산안 국회 시정연설을 직접 하지 않았다. 야당이 모욕할 가능성을 우려했다고 한다. 제22대 국회 개원식 불참 때도 같은 이유를 댔다. 야당의 태도가 문제이지만, 커져만 가는 대통령의 허물도 여의도로 가는 길을 더 어렵게 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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