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종 논설위원

참모들 한목소리 요구도 거부
집단 요구를 부당한 압박 인식
이종섭 황상무 명품가방 반복

모든 기준을 불·합법으로 판단
정치하려면 ‘민심법’ 따라야
시정연설 불참도 안타까운 일


대통령실에 근무했던 한 참모가 윤석열 대통령의 의사결정 스타일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다. 참모들이 의견을 모아 한목소리로 ‘이런 것 하셔야 한다’고 건의하면 돌연 하지 않겠다는 반응을 보이는 적이 있다고 한다. 검사 시절 함께 일했던 인사들 얘기도 종합해 보면 윤 대통령은 집단으로 어떤 의견을 전달하는 것을 ‘부당한 압박’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가끔 특유의 반골 기질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지난 총선 기간 중 이종섭 호주 대사 임명 문제와 황상무 시민사회수석의 ‘회칼’ 발언이 물의를 빚어 사퇴 압박을 받은 적이 있다. 대통령실 참모들도 이런 여론을 무시할 수 없어 몇 명이 대통령을 직접 찾아가 두 사람의 경질을 요구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두 사람이 무슨 불법을 저질렀느냐”면서 되레 불같이 화를 내면서 건의를 했던 참모들을 질책한 바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이런 직언을 한 다음 날 대통령실 명의로 두 사람이 아무런 불법이 없었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 두 사람은 결국 사퇴했다. 여론이 급속히 악화한 뒤 사퇴했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김건희 여사의 명품 가방 문제도 마찬가지다. 불법이 없었기 때문에 사과할 수 없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박절하지 못했다”는 말만 했다. 그러나 총선 패배에 여론의 압박이 커지자 결국 ‘사과’라는 말을 했다. ‘정치 브로커’로 불리는 명태균 씨와 취임식 하루 전인 2022년 5월 9일 김영선 전 의원의 공천을 약속하는 통화를 한 것이 최근 큰 문제가 됐다. 그러나 대통령실과 친윤은 바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 당선인 신분이므로 공무원이 아니기에 공직선거법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논리만 내세웠다. 검찰이나 법원에 따져야 할 법리적 문제만을 가지고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하니 민심과는 한참 동떨어져 있다.

윤 대통령은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참모들에게 가장 먼저 묻는 질문이 “불법이 있느냐”라는 말이다. 검사 출신이다 보니 사건에 대한 판단을 여전히 합법과 불법의 사이에서 판단하려는 인식이 작동하고 있다. 그러나 용산 대통령실은 더 이상 서초동 검찰청이 아니라는 것을 모르는지, 알아도 무시하는 것인지 모를 일이다. 법은 최소한의 도덕적 기준인데도 이를 모든 것을 가르는 최고의 가치로만 생각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지난 4월 총선 패배 이후 핵심 참모들 회의에서 “이제 ‘정치하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그 후에 나타난 대통령의 행보는 여전히 불법과 합법만 따지는 대통령 그 이상도 아니다. 법리를 두고도 논란이 없지 않지만, 실정법 위에 ‘민심법(民心法)’이 있고 정치하는 대통령은 이를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윤 대통령의 말이 이젠 “오직 한 사람(김 여사)에게만 충성한다”는 것으로 변질됐고, 법과 상식·공정의 가치도 더는 국민에게 감동을 주지 못하는 상황이 됐다.

여기에 마지막 남은 대통령으로서의 헌법적 의무마저 다하지 않는다는 인상을 국민에게 심어준다면 해답이 없다. 1988년 노태우 대통령 때부터 대통령은 국회에서 예산안을 설명하는 시정연설을 했다. 지난 11년간 대통령은 매년 국회를 찾았다. 윤 대통령은 지난 제22대 국회 개원식에 이어 이번에도 불참하고 한덕수 총리에게 대독시켰다. 한동훈 대표와 ‘독대’도 피하면서 연설도 ‘대독’시킨다는 비난이 나온다. 윤 대통령이 국회에서 시정연설을 하는 대상은 국회의원에 국한되지 않고 국민에게 보고하는 것이다. 아무리 야당 의원들이 결례를 범한다 해도 이는 대통령의 헌법적 임무이다. 국회와 이렇게 담을 쌓는데 법안 통과가 필요한 노동·연금·의료·교육 등 4대 개혁은 어떻게 이루겠는가. 갈수록 태산이다.

지지율 10%대 추락은 민심의 심각한 경고이다. 유일한 길은 첫째, 한 대표에 대한 개인적 앙금을 털고 당에 협조를 요청해야 한다. 둘째, 김 여사의 모든 대외활동을 중단시켜야 한다. 셋째, 대통령실과 내각의 과감한 인적 쇄신으로 변화의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 계속 ‘거꾸로’식 태도를 보인다면 야당의 탄핵·하야 쓰나미는 더 거세질 것이다. 임기 후반을 시작하면서 왜 대통령이 되고자 했는지 초심을 되새기기 바란다.

이현종 논설위원
이현종 논설위원
이현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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