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핑크 로제가 팝스타 브루노 마스와 협업한 신곡 ‘아파트’(APT.)가 미국 빌보드 메인 싱글 차트 ‘핫 100’ 8위에 올랐다. K-팝 역대 여성 솔로 가수 중 최고의 순위. K-팝 가수 전체로 범위를 넓혀도 방탄소년단(BTS)과 솔로 지민·정국(1위), 싸이(2위)에 이어 ‘핫 100’에서 톱 10에 진입한 역대 5번째 가수로 기록됐다. BTS 멤버들의 잇단 입대로 공백이 생기고, 블랙핑크도 뿔뿔이 개별 활동에 나서면서 K-팝의 기세가 좀 시들해진 게 아닌가 하는 시점에서 나온 참으로 반가운 소식이었다.
‘아파트’는 처음부터 심상치 않아 보였다. 글로벌 스포티파이와 전 세계 40개국 아이튠즈 ‘톱 송’ 차트 1위에 올랐고, 뮤직비디오 공개 5일 만에 조회 수 1억 건을 돌파했다. 일주일쯤 지난 지금은 수많은 인터넷 ‘밈’(Meme)과 SNS ‘챌린지’를 쏟아내며 2억 건을 훌쩍 넘어섰다. 영국 오피셜 차트에선 2위로 도약했다.
이런 신드롬을 통해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는 게 있다. K-팝은 여전히 신선하고 매력적이라는 점, 그리고 K-팝의 힘은 결국 ‘K-팝스러운 색깔’에 있다는 점이다. 빌보드와 세계 음악 팬들은 최근 몇 년간 새로움에 목말라 있었다. 테일러 스위프트와 비욘세의 팝과 솔(soul), 켄드릭 라마와 포스트 멀론, BTS의 댄스와 힙합을 대신할 ‘섬싱 뉴’를 찾고 있었다. 이런 흐름에 맞춰 빌리 아일리시, 올리비아 로드리고, 사브리나 카펜터 같은 20대의 젊은 여성 가수들이 약진했고, 백인들의 전유물이던 컨트리 음악을 재해석한 흑인 가수 샤부지가 얼마 전까지 빌보드 차트를 휩쓸었다.
이 와중에 등장한 것이 ‘아파트’다. 한국식의 외래어 아파트를 전면에 내세운 ‘아파트’는 누가 봐도 ‘K-팝적’이었다. 앞서 같은 그룹의 멤버 리사와 제니가 각 ‘록스타’(Rockstar)와 ‘만트라’(Mantra)를 내놓았지만, 결이 조금 달랐다. ‘록스타’와 ‘만트라’가 K-팝의 분위기를 한 스푼 줄이고, 세련된 월드팝을 두 스푼 더 넣었다면 ‘아파트’는 작정하고 K-팝을 드러냈다. 도입부에서 로제의 한국어 랩, 아파트라는 후렴구의 반복, 술 게임에서 비롯한 간결하고 중독적인 리듬이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임을 다시 입증했다. ‘한글의 탄생’의 저자인 노마 히데키(野間秀樹) 일본 도쿄외국어대 대학원 교수는 신간 ‘K-팝 원론’에서 “K-팝은 21세기형 종합예술이다. 목소리, 시(詩), 소리, 빛, 신체성이 통합된 세계상이 온라인 세계에 나타나는 순간, 지구상의 수많은 사람이 다양한 방법으로 공유한다”면서 “K-적인 것이야말로 세계가 공유할 수 있으며, 어느 누구도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K-아트만의 가장 강력한 전략이 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K-팝의 진화엔 든든한 뿌리가 있다. 가왕 조용필은 칠순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최근 새 앨범 ‘20’을 발표했다. 타이틀곡 ‘그래도 돼’는 “한 번도 내 곡에 만족한 적이 없다”고 한 겸손함을 넘어 가왕의 품격을 보여준다. 10주기를 맞아 다시 조명된 신해철의 곡들은 또 어떤가. ‘날아라 병아리’ ‘일상으로의 초대’ 등 그가 직접 쓴 가사엔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K-팝만의 힘과 한이 담겨 있다. K-팝이 K-적인 것을 잊지 않는 한 전진은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