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임기 반환점이 1주 앞이다. 지난 2년 반의 수고를 위로하고 후반에 더 잘하라고 격려해주는 것이 인지상정이지만, 요즘 윤 대통령 부부와 용산 대통령실을 바라보는 국민 시선은 싸늘하다. 지난 대선에서 윤 대통령을 지지했던 보수 성향 국민은 ‘이런 사람을 찍었나’라며 자괴감을 느낄 지경이 됐다. 지난 1일 발표된 한국갤럽 정기 여론조사에서 윤 대통령이 잘하고 있다는 응답이 19%에 그친 것도 충격적이지만, 보수의 성지라는 대구·경북에선 18%였다는 점은 그런 심정을 말해준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4일 정부 예산안 시정연설을 직접 하지 않고 한덕수 총리에게 대독시켰다. 시정연설은 내년도 정부의 살림살이를 설명하는 기회, 즉 납세자 국민에게 감사를 표하고 최대한 효율적으로 집행할 것임을 약속하는 자리다. 역대 대통령이 가급적 직접 국회를 찾았고, 박근혜 전 대통령 이후에도 11년 동안 빠짐없이 대통령이 그렇게 했던 이유다. 그런데 이번에 윤 대통령은 불참했다. 부득이한 사정이 있다면 국민에게 직접 양해를 구하는 게 도리다. 지지율이 낮을수록 더 적극적으로 국민·국회와 소통해야 하는데 이런 기회마저 회피하는 행태를 이해하기 힘들다.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더불어민주당이 대통령을 탄핵하겠다고 거리에 나서는 상황에서 차분한 시정연설이 되겠냐”고 했지만 궤변이고, 국민을 바보로 여기는 발상이다. 만약 야당이 행패를 부린다면 대다수 국민은 그런 야당을 비난할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는, 이런 식으로는 국정 동력을 만들어낼 수 없고, 법 개정이 필수적인 4대 개혁도 빈말에 그칠 공산이 크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전혀 인식이 다른 듯하다. 김건희 여사 문제에 대한 과감한 결단이 필요한데도 뭐가 문제냐는 식으로 국민에게 어깃장을 놓는다. 지난 1일 정진석 비서실장의 국회 답변은 상징적이다. “공관위에서 나한테 들고 왔길래 김영선이를 좀 해줘라 그랬는데 당에서 말이 많네”라는 윤 대통령 육성이 공개됐는데도 정 실장은 “정치적·법적·상식적으로 아무 문제 될 게 없다”고 했다. 윤 대통령이 거짓말을 한 게 아니라면, 정치적·법적·상식적으로 모두 문제가 심각한 발언이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4일 윤 대통령 사과, 참모진 전면 개편, 내각 쇄신 등을 요구했고, 지난 3일에는 여당 시도지사 협의회가 적극 소통과 국정 쇄신이 필요하다는 입장문을 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1심 판결 뒤엔 이런 분위기가 뒤집힐 것으로 본다면, 엄청난 착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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