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레미 찬 유라시아그룹 선임연구원이 지난달 29일 문화일보와 화상 인터뷰에서 윤석열 정부가 추진 중인 4+1 개혁의 성공 조건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제레미 찬 유라시아그룹 선임연구원이 지난달 29일 문화일보와 화상 인터뷰에서 윤석열 정부가 추진 중인 4+1 개혁의 성공 조건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창간 33주년 특집
‘윤 정부 개혁 이렇게’ 전문가 인터뷰
<4> 제레미 찬 유라시아그룹 선임연구원


워싱턴 = 글·사진 민병기 특파원 mingming@munhwa.com

동아시아의 경제·지역 안보를 전문으로 연구하고 있는 제레미 찬 유라시아그룹 선임연구원은 윤석열 정부의 이른바 4+1 개혁(연금·의료·교육·노동 4대 개혁+저출생 위기 극복)에 대해 방향은 전적으로 옳지만 무엇보다 “지금이 국가적 위기라는 것을 국민이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개혁의 성공 조건은 초당적 합의와 대중의 지지”라며 “윤석열 정부의 개혁 미진은 정책을 둘러싼 메시지와 소통이 (국민의) 지지를 얻지 못하는 점”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높은 수준의 인적 자본은 동아시아 발전의 힘이었지만 구조개혁에는 걸림돌이 될 수 있다”며 “단 한국이 가진 특징이자 장점인 높은 사회적 결속력이 개혁의 걸림돌이 될 수도, 동력이 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제레미 찬은 국내 대기업의 해외법인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했고 이후 여러 싱크탱크에서 한국,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의 경제·사회·안보 문제를 연구하는 한편, 각국 정부와도 협력 사업을 해와 외부의 시선으로 국내 구조개혁의 중요성과 성공 조건을 듣기에 적임이라고 판단했다. 제레미 찬과의 인터뷰는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오전 화상을 통해 이뤄졌다.

■ 개혁의 성공조건
보수·진보·중도 초당적 합의로
野와‘개혁의 功’나눌 수 있어야
문제 심각성·해법 대중과 공유


― 윤석열 정부는 연금·의료·교육·노동 개혁 등 사회구조를 바꾸는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이 같은 개혁을 추진할 때 가장 중요한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현재 진행 중인 한국의 인구구조 문제를 한국 사회의 장기적인 건강과 한국 경제의 활력에 가장 근본적인, 그리고 실존적인 문제로 인식하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의 지적, 판단은 전적으로 옳다. 그간 대화를 나눠본 한국의 공무원들 사이에서도 이 문제가 구조적이고 반드시 해결해야 할 실존적인 문제라는 인식이 퍼져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를 위한, 그리고 하나같이 필수적인 4대 개혁 역시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한 가지, 이 문제에 쉬운 해결책이 없다는 점도 말하고 싶다. 비단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저출생의 경우 한국과 동아시아 대부분 국가에서 금기시되거나 민감하다고 생각되는 문제, 대량 이민을 제외하고 정책적 해결책을 찾은 국가는 없다. 사실 결국 4+1 개혁은 한국 사회가 작동하는 방식을 바꿔야 하는데, 매우 어려운 일이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교육에 대한 선호, ‘내 자식은 나보다 나아야 한다’는 사회적 압박을 줄여야 한다. 아이를 효과적으로 키우고 사회에 경쟁시키기 위해 대여섯 살 때부터 ‘학원’(제레미 찬은 한국의 특수한 조건을 거론하기 위해 ‘학원’이라고 말했다)을 다니고 경쟁하고 대학을 나온 뒤 좋은 직장에 가야 하는, 이 삶은 부모와 자식 모두에게 큰 부담이 되는 상황이 된다. 그리고 이 같은 구조는 다시 부동산 가격 같은 부수적인 효과도 가져온다. 우선 4+1 개혁이 매우 어렵다는 점부터, 그래서 정말 제대로 준비해야 한다는 점부터 인식해야 한다.”

― 개혁의 성공 조건을 꼽는다면.

“개혁이 성공하기 위한 조건은 두 가지다. 하나는 정치적 조건, 즉 초당적 합의가 필요하다. 2027년, 즉 차기 대선 이전 한국의 정치적 역학관계를 고려할 때 보수와 야권, 중도좌파 모두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정책적 해법을 찾아야 한다. 좀 더 넓게 보면, 두 번째로 대중의 지지를 얻어야 한다. 지금이 국가가 직면한 위기라는 것을 사람들이 인식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책임 있는 공무원들이 대중적인 메시지를 통해 소통하고 대중이 더 큰 문제로 인식할 수 있도록 제기해야 한다. 그런데 자꾸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지만, 한국의 구조개혁처럼 장기적이고 느리게 진행되는 사회적 문제 사이에는 유사점이 있다. 예를 들어 기후변화는 한국뿐 아니라 많은 서방 국가가 같은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기후변화가 해결해야 할 실존적 문제라는 데에는 모두가 동의하지만 항상 국제분쟁이나 세금 논쟁처럼 사람들이 너무 단기적 요인만 보기 때문에 이 문제가 최우선 순위가 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래서 솔직히 나는 한국이나 윤석열 정부, 혹은 미래의 다른 대통령 아래에서 인구문제, 구조개혁이 대중적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지에 비관적이다.”

― 개혁을 추진할 때 불가피하게 벌어지는 사회·정치적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

“내가 볼 때 2022년부터 2027년까지 한국 정치는 완전 분단 정부(divided government)다. 국회는 야당이 다수당이지만 윤석열 정부는 보수정당에 기반을 두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대부분의 이슈에 대해 두 세력이 큰 이견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사이의 정책 견해의 차이에 더해 윤 대통령과 이재명 민주당 대표 사이의 개인적인 반감이 차이를 더 키운다. 내가 볼 때 두 사람은 근본적으로 광범위한 합의가 있는 문제에 대해서도 함께 협력하지 않으려는 지도자들이다. 그래서 내가 더 비관적이다. 여소야대의 정치 상황, 그리고 두 정치 지도자의 특수성 때문이다. 윤 대통령은 그래서 국회에 실제적인 조치를 취하기보다는 국회의 승인을 우회해서, 자신의 행정 권한이 미치는 범위 내에서 정책을 처리하려 하는데 한계가 분명하다. 다른 개혁 과제도 마찬가지다. 모든 정책 변화는 필연적으로 혜택을 보는 사람과 손해를 보는 사람이 있다. 남성과 여성, 자녀가 있는 경우와 없는 경우, 나이에 따라 어떤 개혁이 제안되더라도 (반대하는) 압력이 존재한다. 그런데 그런 문제를 해결하라고 존재하는 게 정치다. 그게 정치(politics)다. 정치는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이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정책을 만드는 것이고, 당연히 대중의 지지를 받을 수 있도록 메시지, 커뮤니케이션을 내놓아야 한다. 이게 내가 생각하는 윤석열 정부의 가장 부족한 부분이다. 대중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 개혁을 추진할 때 가장 큰 문제는 국민이 바로 효과를 체감하지 못한다는 것인데.

“대중을 어떻게 설득하느냐에 정답은 없다. 하지만 우선적으로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솔직함이 필요하다. 한국이 정확히 어떤 문제에 직면해 있는지, 왜 저출생이 문제인지, 왜 연금 개혁이 필요한지, 연금에 돈 내는 젊은이들이 줄면 한국 경제가 어떤 실질적인 역풍에 직면할 것인지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전달해야 한다. 그리고 두 번째 단계로 해법 역시 그렇게 전달해야 한다. 저출생을 예로 들면, 정부가 더 많은 예산을 투입하는 방법, 그리고 기업이 젊은 부모들에게 더 많은 혜택을 제공하도록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는 방법, 더 나아가 동남아 등지에서 이민자들을 받는 방법까지, 국민 앞에 놓고 이야기해야 한다. 책임감 있는 지도자라면, 국가가 직면한 실존적 도전에 대해 국민을 설득하기 위해 이 정도는 메시지를 내놔야 한다고 생각한다.”

제레미 찬(오른쪽 첫 번째) 유라시아그룹 선임연구원이 지난달 7일 김학조(〃네 번째) 주미 한국대사관 공공외교공사 등과 세미나를 마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주미한국대사관 페이스북
제레미 찬(오른쪽 첫 번째) 유라시아그룹 선임연구원이 지난달 7일 김학조(〃네 번째) 주미 한국대사관 공공외교공사 등과 세미나를 마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주미한국대사관 페이스북


■ 개혁의 걸림돌
여소야대 · 尹정부 낮은 지지율
여당과의 협력‘인센티브’없어
협력않는 두 지도자 더 비관적


― 윤석열 정부의 지지율은 매우 낮다. 개혁의 걸림돌이 될까.

“100% 개혁을 가로막는 장벽이다. 이 지지율이면 야당이 장악한 국회가 윤 대통령과 협력하거나 여당에 정치적 승리를 안겨줄 인센티브가 전혀 없다. 다음 대선이 다가올수록 여당 내 정치인들조차도 윤석열 정부에 협조할 정치적 유인이 줄어들 것이다.”

― 결국 경색된 여소야대 상황이 계속 걸림돌이 된다는 것인가.

“물론이다. 이 문제뿐 아니라 윤석열 정부의 전체 의제가 다 그런 상황 아닌가. 이대로면 모든 개혁이 완전히 죽은 것은 아니지만, 본질적으로 축소되거나 약화돼 거의 의미가 없어지고 있다.”

― 개혁을 위해서는 목표를 정해놓고 빠르게 추진하는 게 맞는 방향인가, 아니면 조금 늦더라도 합의를 끌어내는 게 우선인가.

“정치 상황에 따라 다르다. 만약 4월 국회의원 총선거 때 여당이 더 잘했다면, 아마 나는 지금 윤 대통령에게 빨리 움직이라고 조언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면 이제는 야당과 그리고 국민과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 이 개혁이 성공하면, 야당 지도자들, 이 대표와 공(功)을 공유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 국민의힘의 일, 윤석열 정부의 일이 아니라 한국의 일이라는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

― 저출생 문제로 인한 사회의 지속가능성이 급속히 떨어지고 있다. 최우선으로 바꿔야 할 부분이 무엇인가.

“이 문제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쉬운 해결책은 없다. 유일한 방법은 사회가 바뀌는 것, 사람들이 생각하는 방식이 달라져야 한다. 당장 크게 두 가지의 길이 있다. 자녀 양육에 대한 정부 차원의 재정적 보장을 높이는 것으로, 유럽이 걸어온 길이 있다. 그리고 미국이 이미 가고 있는 길, 즉 이민자를 환영하고 동화할 수 있는 이민자 친화적인 사회가 되는 것이다.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들, 노동연령대의 사람들을 수입하는 것이다. 이들이 월급을 받고 세금을 내고 하는 과정은 또 다른 문제를 낳을 수 있다. 모든 게 도전 과제다. 결국 정책 결정은 우선순위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다. 어떤 식으로 사회가 변화할 것인지, 사회 전체의 컨센서스가 있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발생할 사회적 갈등도 어마어마하지만 우선 어떤 방향으로 한국 사회가 갈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 개혁에 임하는 자세
‘단기 고통 불가피’국민 설득을
목적을 위한 다양한 수단 필요
근본원인 해결 ‘청사진’내놔야


― 의료 개혁에서는 개혁의 중요한 당사자이면서 동시에 개혁 대상이기도 한 의사들의 반대가 매우 거세다. 노동 개혁에서는 노조의 반대가 만만치 않다. 연금 개혁 역시 연금을 내는 근로자들의 반발이 크다. 정부 입장에서 어느 정도까지 개혁의 당사자와 타협해야 하나.

“내가 본 윤 대통령은 정말 신념이 깊고, 고집스럽다. 더 많은 의사가 필요하다는 신념이 있는 것 같은데, 더 넓은 정책과 커뮤니티 내에서 그 신념에 대한 이견은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정책의 목적 혹은 목표가 아니라 수단이다. 어떻게 하면 거기에 도달할 수 있을까. 윤 대통령은, 영어에서 말하는 ‘도자기 가게 안의 황소(a bull in a china shop·부주의하고 서툴다는 의미)’ 같은 것이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 수단은 다양할 수 있는데 그 부분에서 전혀 타협이 이뤄지지 않으니 문제다. 또 만약 의대 정원을 2000명 늘리는 방안을 내놓더라도 500명 혹은 1000명으로 타협할 수도 있는데, 2000명 될 때까지 어떤 것도 양보할 수 없다는 태도로는 의미 있는 개혁을 이루기 어렵다. 전공의들의 파업이 얼마나 오래 지속됐는지, 그리고 야당이 얼마나 강하게 반대했는지 봤을 텐데, 이게 바로 모든 분야에서 의미 있는 개혁을 이루기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는 지점이다. 좀 더 예민한 정치인, 정책을 만들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좀 더 경험이 많은 정치인이었다면 더 성공적일 수는 있었을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문재인 전 대통령, 혹은 그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도 그들이 사회 개혁에 성공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목표에 야심이 없었거나, 혹은 다음 정권으로 미루려는 의지가 강했을 것이다. 물론 전 세계 많은 정치 지도자들이 겪은 문제이고 빠지기 쉬운 유혹이다.”

― 개혁은 필연적으로 단기적인 고통이 뒤따른다. 정부는 어떻게 국민을 설득해야 하고, 국민은 어떤 자세로 개혁을 대해야 하나.

“단기적인 고통은 불가피하다. 그래서 정부가 확실히 보장할 수 있는 부분은 보장하고 사회 구조적인 문제의 근본 원인을 해결하는 청사진을 제시해야 한다. 그래서 연금 개혁이나 의료 개혁은 저출생 문제 해법과 같이 갈 수밖에 없다. 물론 장기적으로는 윤석열 정부도 물러나겠지만 4대 개혁과 저출생 개혁을 함께 풀어가는 해법,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는 데 의미 있는 진전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 국가적 과제로서의 개혁을 추진하는 데 있어 한국 혹은 동아시아의 특징이 있나.

“인구통계학적으로 동아시아 전체가 저출생에 특히 더 어려움을 겪고 있다. 나는 특징으로 교육을 꼽는다. 동아시아 발전 모델의 강점 중 하나가 바로 교육이다. 고학력 인구, 높은 수준의 인적 자본이다. 하지만 이를 어떻게 달성할 수 있나. 오랜 세월에 걸친 꾸준한 노력과 올바른 교육이 필요하다. 아이를 키우는 데 드는 시간·재정적 비용, 학력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사회적 압박, 아이를 갖지 않으려는 유인과 장벽은 계속 높아진다. 여기서 필요한 한국의 강점이 사회적 결속력이다.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때 금 모으기 운동, 국가적 위기라는 걸 인식하니까 전 사회가 하나로 뭉쳤다. 지금 인구문제도 같은 문제라고 확신한다면, 더 많은 이들이 이 문제 해결을 위해 자신의 시간과 자원을 기꺼이 기부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대중의 의식이 저 수준에 근접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프린스턴대 △존스홉킨스대 국제대학원 △SK차이나 리서치 분석가 △영국문화원 연구·마케팅 지역책임자 △미 국무부·주중·주일 대사관 근무 △토니 블레어 세계변화연구소 △유라시아그룹 동북아시아 선임연구원
민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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