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고 - 최민호 세종시장

박정희 전 대통령이 고속도로를 건설할 때나, 영종도 공항을 시작할 때 야당과 환경론자들은 갖은 이유를 들어 결사반대했다. 그때 만일 반대에 부닥쳐 건설을 중단했더라면? 아찔하기만 하다. 임진왜란 직전 일본을 둘러보고 돌아온 김성일과 홍윤길은 선조 앞에서 서로 엇갈린 주장을 한다. 역사의 결말은 모두가 주지하는 바다. 반대 주장에 못 이겨 전쟁 준비를 소홀히 한 결과 백성들이 당한 재앙과 처참한 불행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다수의 비전문가가 전문가를 억누르는 것은 비극의 서막이요, 미래를 내다보지 못한 근시안적 주장은 역사적 재난으로 끝맺는 것을 종종 보아왔다. 지금은 달라졌을까?

지난 몇 달간 세종시에서는 2026 국제정원도시박람회로 온통 시끄러웠다. 잘 갖춘 정원 인프라를 활용한 정원산업과 어려운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추진해 온 시장 공약사업을 여소야대 시의회에서 예산 전액을 삭감하면서부터다. 시장이 6일간의 단식으로 호소했지만, 결론적으로 야당이 당론으로, 기명투표로 부결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 이후 시민들의 관심이 초집중됐다. 정원도시박람회가 무엇이길래 민주주의의 기본인 비밀투표마저 포기하며 당론으로 부결한단 말인가.

많은 시민은 야당이 부결한 이유를 2026년 4월이라는 시기에서 찾았다. 지방선거를 코앞에 둔 시점이라는 것이다. 조직위의 구성을 야당 소속 국회의원과 시의원에게도 열어 여야가 온 시민과 함께 박람회의 성과를 다 같이 나누자고 말해보아도 별 무소용이었다. 시장의 단식은 불발탄이었지만 박람회를 지지하는 많은 시민과 전국적 인사들이 단식장을 찾아오고, 격론이 언론을 달구어, 세종정원도시박람회는 예상치 못한 홍보 효과를 보았다.

문제는 앞으로 어떻게 할 거냐는 것이다. 중앙정부가 국제행사로 승인하고 지원을 약속한 박람회를 무산시키고 말 것인가, 국비도 반납하고 그간 들였던 예산과 노력도 포기하고 대내외적으로 행사를 취소하고 말 것인가?

단식 복귀 이후 각계각층의 사회단체, 종교계, 경제계 시민들께 물었다. 시민들은 지역발전을 위해 국비까지 지원되는 박람회를 포기할 수 없다는 의견을 압도적으로 지지했다. 다만 시기를 4월이 아닌 가을로 연기하는 방안이 바람직하다는 대안을 제시했다. 비록 방문객 유치가 봄보다는 불리하겠지만 정치 현실을 무시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었다.

무엇보다 가슴을 울린 것은 ‘정치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에 대한 시민들의 대답이었다. 정치란 ‘국민들께 선한 영향력을 끼쳐 당선되는 것이지 상대방을 끌어내려 당선되는 것이 아니’라는 철칙, ‘정치인은 다음 시대를 보아야 하고, 다음 선거만을 바라보는 정치는 실패한다’는 따끔한 가르침이었다.

중앙이든 지방이든 정치라는 이름으로, 국민을 생각하는 척하며, 내심으로는 다음 선거에 무엇이 유리한 것인가를 따지는 행태는 국민이 더는 바라지 않는다. 무엇을 위한 반대이고 누구를 위한 정치인가? 정부 여당의 실패가 야당의 성공이라는 패러독스에 우리 정치가 함몰돼 있지는 않은가?

하여 나는 결심했다. 박람회를 지방선거가 끝난 뒤인 2026년 가을에 개최하자. 그것을 바라는 시민들의 제안을 받들어 의회와 다시 협의하자. 부디 의회에도 간고한다. 정책을 정치로 풀지 말자. 시민들이 저리 무섭게 지켜보고 있다. 아직 늦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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