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근 한국경영자총협회 상근부회장

하나의 산업이 성장하고 경쟁력을 갖추기까지는 수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반면, 공든 탑을 무너뜨리는 것은 순식간이다. 특히, 자동차 산업은 변화와 혁신의 한가운데 있다. 전기차와 자율주행으로의 전환기를 맞아 각국 주요 완성차 업체들은 매일 소리 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 테슬라의 첨단 주행 보조 소프트웨어 완전자율주행(FSD) 대중화와 화웨이 등 중국 완성차 업체들의 변화를 위한 움직임도 매우 거세다. 다행히 우리나라 업체들도 경쟁에 뒤처지지 않고 많은 성과를 내고 있다. 하지만 글로벌 자동차 시장 트렌드를 선도하지 못하면 생존을 장담할 수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근 언론 보도를 보면, 현대자동차·기아 핵심 부품 그룹사인 현대트랜시스 노조는 회사 소재지인 충남 서산은 물론, 교섭 대상도 아닌 현대차·기아의 사옥이 있는 서울 서초구 양재동까지 상경해 사옥 인근의 도로를 점거하고 스피커를 설치해 자신들의 요구를 외쳤다고 한다. 정부가 지난 8월부터 집시법 시행령을 개정해 소음 허용 기준치를 하향 조정했지만, 노조는 일반 시민은 안중에도 없이 자신들의 권리 주장을 위해 허용된 데시벨 한도를 넘나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노조는 지난달 8일 파업을 시작해 매출액의 2%를 성과급으로 요구하고 있다. 지난해 연결기준 매출액인 11조6940억 원을 기준으로 한다면 2300억 원이 넘는 금액으로, 지난해 영업이익의 2배에 이른다. 노조는 성과급 기준을 매출액으로 잡아 영업이익이 발생했을 때뿐 아니라 영업손실을 본 경우에도 성과급을 지급하라는 속내를 드러낸다.

성과급은 영업실적을 기반으로 지급한다. 영업이익의 2배나 달라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이미 평균 1억 원 이상의 연봉을 받는 조합원들이 과도한 성과급을 요구하며 장기간의 파업과 집회로 국민 불편을 초래하는 행태는 공감도 얻을 수 없다. 회사는 생산을 정상화하기 위해 임금 인상과 경영 성과에 따른 성과급·격려금 지급을 제시했지만, 노조는 파업과 집회를 계속한다.

노조의 투쟁 양태도 문제다. 사측이 안을 제시하기 전에 교섭 결렬을 선언하며 파업에 들어가는 등 노사 관행을 무시하고, 파업을 유지한 채 교섭에 임할 것을 관철하며 몽니를 부리기도 했다. 노조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파업 기간에 조합원들은 무노동 무임금 원칙에 따라 임금 손실을 감내해야 한다. 파업이 계속되면 조합원들은 700만 원 이상의 손실을 본다고 한다. 한 가정의 생계가 무너지는 것이다. 그런데도 노조 집행부는 파업을 밀어붙인다.

노조 파업이 장기화하면서 자동차 산업 전반에도 적신호가 켜졌다. 현대트랜시스가 생산하는 파워트레인 관련 부품의 수급 차질 때문이다. 파업으로 인해 현대차·기아가 감수해야 하는 생산 차질은 수만 대로 추산된다고 한다. 일각에서는 신차 출시 계획 연기를 검토해야 한다는 말까지 나온다. 게다가 완성차 부품 공급망에 참여한 수많은 중소 협력업체에 생산과 납품 차질을 초래해 해당 업체들의 경영상 어려움이 배가된다.

시간이 없다. 노조는 하루빨리 아시타비(我是他非)의 집단 이기주의에서 벗어나 생산 현장으로 복귀해 노사관계를 정상화해야 하고, 글로벌 경쟁을 이겨내기 위한 노력에 힘을 보태야 한다.

이동근 한국경영자총협회 상근부회장
이동근 한국경영자총협회 상근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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