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월 1일 0시 1분. 새해가 시작되자마자 국회 본회의가 열렸다. 2013년도 예산안을 처리하지 못하고 신년을 맞았기 때문이다. 예산안과 쟁점 법안을 묶어 여야가 힘겨루기 하는 일이 매년 반복돼 예산안 법정처리시한(12월 2일)을 지키지 못하는 게 당연시되기는 했지만, 해를 넘긴 것은 처음이다. 민주당 의원 일부가 갑자기 제주 해군기지 예산을 문제 삼으면서 일정이 꼬였다. 여야는 밤샘 협상을 통해 절충안을 만들어 1일 오전 6시 4분에야 2013년도 예산안을 의결했다. ‘준예산’을 막기 위해 새해 첫날 새벽 본회의를 여는 진풍경은 이듬해에도 반복됐다. 국가정보원 개혁과 ‘패키지’였던 2014년도 예산안은 막판 외국인투자촉진법 개정 반대에 발목이 잡혔다. 국회는 2014년 1월 1일 오전 3시 49분 본회의를 열고 예산안과 법안 등을 처리했다.
헌법에 예산안 처리시한을 둔 것은 세부 예산 배정과 집행계획을 세울 시간적 여유를 주기 위해서다. 하지만 2000∼2011년 단 한 차례만 처리시한을 지켜 입법기관인 국회가 헌법을 어긴다는 비판이 거셌다. 이에 11월 30일까지 예산안과 세입예산안 부수 법률안 심사를 마치지 못하면 그다음 날 본회의에 자동 부의되도록 하는 제도가 2012년 국회 선진화법을 통해 도입됐다. 예산안 등 자동 부의제는 2015년도 예산안부터 적용돼 2014년에는 처리시한인 12월 2일 본회의에서 의결했다. 이후 2021년까지 최소한 정기국회 회기 중에 예산안이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 같은 효과에도 더불어민주당은 자동 부의제를 없애려 하고 있다. 국회 운영위원회는 지난달 31일 자동 부의제 폐지를 골자로 하는 국회법 개정안을 처리했다. 여당은 제도가 도입된 취지를 강조하며 반대했지만 소용없었다. 민주당은 국회의 예산 심사권이 침해되고 있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심사 시간이 부족해 졸속으로 심의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주장이다. 야당은 법안을 조속히 처리해 당장 내년도 예산안 심사부터 적용한다는 계획이다.
민주당 주장대로 예산안 심사 시간이 부족하다면 이는 자동 부의제 탓인가? 그보다는 국회가 정해진 일정을 지키지 않는 점을 반성하는 게 우선이다. 국회법에는 결산을 ‘정기회 개회 전까지’ 완료해야 한다고 돼 있다. 국정감사·조사법에 따르면 국감은 정기회에도 할 수 있지만 ‘정기회 집회일 이전’에 하는 게 원칙이다. 9월 시작하는 정기회에서는 예산안과 세법 개정안 심사에 주력하라는 취지다. 국회는 올해 역시 정기회가 시작한 후 전년도 결산안을 심사했고, 국감은 10월에 진행했다. 예산안 심사는 이달부터 시작했다. 또, 세법을 담당하는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심사소위원회는 아직 한 차례도 회의를 열지 않았다.
민주당 주장과 달리 자동 부의제와 ‘심도 있는’ 심사 사이에는 별 관계가 없다. 제도를 없앤다면 새해 첫날 본회의가 대표하는, 연말 지각 처리라는 구태만 돌아올 것이다. 민주당이라고 이를 모르지 않는 듯하다. 국회법 개정안 제안 이유에는 ‘심의기한을 준수한 사례도 2차례에 그친다’고 돼 있다. 어차피 못 지킬 법정시한인데, 귀찮은 제도 없애자는 게 민주당의 본심 아닌가.